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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소년 2명 90만원!" 리비아 노예 경매시장 포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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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디나르부터 시작합니다. 900… 1000… 1100… 팔렸습니다."

트리폴리 해안 경비대에 구조된 난민. [로이터=연합뉴스]

트리폴리 해안 경비대에 구조된 난민. [로이터=연합뉴스]

낙찰가 1100 리비아 디나르. 우리나라 돈으로 90만원쯤 된다. 경매시장에서 90만원에 팔려나간 건 물건이 아니라 남자 2명 값이었다.

갱 연루된 밀수꾼 난민선 단속 심해지자 #배 태우는 대신 인간 시장 노예로 팔아 #CNN, 리비아에서만 경매 시장 9곳 확인

CNN이 리비아의 노예 경매시장 영상을 입수해 14일(현지시간) 단독 보도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상에 따르면 두 남자 중 1명은 20대 나이지리아인이었다. 낡은 셔츠와 바지를 입은 이 남자를 경매인은 "농장 일에 적합한 크고 힘센 소년들"이라고 소개했다.

CNN은 제보 영상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리비아로 향했다. 카메라를 숨기고 수도 트리폴리 외곽의 노예 경매 시장에 잠입한 취재진은 6~7분 사이에 10여 명이 팔려나가는 현장을 포착했다.

"땅 팔 사람은 필요 없어요? 여기 크고 강한 사내가 있습니다."

군복을 입은 경매인이 말하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값을 불렀고, 몇 분 만에 거래는 끝났다. 사내는 새 '주인'의 손에 넘겨졌다.

경매가 끝난 뒤 취재진은 팔려나간 남성 둘을 만났지만, 이들은 충격을 입어 말을 하지 못했고, 공포에 질려 만나는 사람 누구도 믿지 못했다.

리비아의난민 수용소. [CNN 캡처]

리비아의난민 수용소. [CNN 캡처]

CNN은 총 9곳의 인간 시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더 많은 노예 경매 시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비아에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인들이 몰린다. 대부분 전 재산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국경을 넘지만, 최근 리비아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바다로 나가는 난민선은 확 줄었다. 그전엔 밀입국 장사를 하던 자들은 이제 '주인'이 되어 난민을 '노예'로 팔아넘기고 있다.

CNN은 입수한 취재 영상을 리비아 당국에 넘겼고, 정부는 조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트리폴리의 불법이민단속청 나세라 하잠 중위는 CNN에 노예 시장을 목격한 적은 없다면서도 갱 조직이 밀입국에 연루돼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그들은 난민선에 100명씩 때려 넣는다. 돈만 받으면 그뿐이라 생각하고, 난민들이 유럽에 가든 말든 바다에 빠져 죽든 말든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노예 시장은 리비아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마을에서 열렸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놀고, 사람들은 일하러 가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가족을 위해 저녁밥을 짓는 일상 말이다. 하지만 바로 옆의 경매 시장은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했다고 CNN은 설명했다.

오래전 영화 '뿌리'에서 나타난 노예 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난민들의 손과 발에 쇠고랑을 채우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트리폴리의 난민 수용소 감독관 아네스 알라자비는 "밀수꾼들에게 학대당했다는 이야기를 무척 많이 들었다. 매일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건 정말 고통스럽다. 믿어달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트리폴리 난민 수용소에서도 노예로 팔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21살 청년 빅토리는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며 리비아에 왔지만, 밀수꾼들에게 붙잡혀 팔려나갔다. 밀수꾼들은 빅토리의 몸값은 빚을 갚는 데 쓴다며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학대했다. 그는 그 뒤에도 몇 차례나 거래됐다.

노예로 팔린 경험을 이야기하는 남성. [CNN 캡처]

노예로 팔린 경험을 이야기하는 남성. [CNN 캡처]

밀수꾼은 빅토리를 풀어주는 대가로 고향 가족들에게 배상금을 요구했다. 결국 빅토리는 고향에서 탈출해 다시 돌아가기까지 2780달러(약 310만원)를 썼다. 그는 "엄마는 나를 구하기 위해 여러 마을을 돌며 돈을 빌렸다"고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몸을 확인해 보면 대부분 흉터를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사람들을 때리고, 불구로 만들어놨죠."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러피안 드림을 안고 고향을 벗어난 난민들은 올해에만 8800여 명이 자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갔다. 빅토리도 돈만 잃은 채 망가진 몸과 마음을 안고 빈손으로 고국에 돌아가게 됐다.

독일 일간 타게 슈피겔에 따르면 1993년부터 지난 5월까지 유럽으로 향하다 숨진 난민은 3만3293명에 달한다. 지옥을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건 새로운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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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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