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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누르자 쥐가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뇌가 지배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대 난제에 도전하다]④뇌는 난제의 블랙박스…“뇌 정복 국가가 세계 지배”

뇌 조작하면 신체·정신 통제 #미국·유럽·일본은 뇌 연구에 조 단위 투자 #뇌 연구가 신산업 창출 계기 될 수도

가장 혁신적 연구자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주한다는 미국 스탠포드대 제임스클라크센터. 이 건물 서관(west wing) 2층 리랩(The Lee Lab)엔 검은 쥐들이 우글거렸다. 쥐들은 머리에 종 모양 기계장치를 모자처럼 쓰고 있었다. 레이저를 쏘아 쥐의 뇌를 자극하는 광학장치다.

리랩의 검은 쥐는 코를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를 지켜보던 이진형 스탠포드대 바이오공학과 교수가 쥐와 전선으로 연결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검은색 기계에서 파란 불빛이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쥐가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시 버튼을 조작하자 이번엔 쥐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춤을 췄다. 레이저로 뇌의 특정 부위(선조체·stratum)를 자극했을 뿐인데, 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

신의 영역이었던 감각의 세계가 인간의 연구 영역으로 들어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신의 영역이었던 감각의 세계가 인간의 연구 영역으로 들어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뇌는 컴퓨터로 따지면 중앙처리장치 또는 메모리 역할을 한다. 오감이 받아들인 데이터를 연산·저장한다는 뜻이다.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100m를 9초58에 주파한 배경엔 대퇴부 움직임을 지시한 소뇌가 있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주의 비밀을 조금씩 벗긴 것은 고등사고를 관장한 대뇌 덕분이다.

뇌를 지배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통제한다. 리랩의 검은 쥐가 신체 통제권을 넘겨준 건 뇌를 지배당했기 때문이다. 쥐에게 이 교수는 ‘신’과 진배없는 존재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은 뇌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뇌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수많은 난제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풀리기 때문이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은 “뇌 연구는 난제의 블랙박스”라며 “뇌의 작동 원리만 파악해도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대퇴부가 마비된 환자도 소뇌 기능을 회복하면 운동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 언어능력을 상실한 환자가 전두엽의 기능을 회복하면 실어증을 극복한다. 치매·우울증·뇌졸중 등 갖가지 뇌질환도 치료할 길이 열린다.

인간의 ‘능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착용할 수 있는 기기)를 뇌와 연동하면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근력을 강화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일종의 ‘아이언맨 수트’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2016년 7월, 미국 워싱턴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대뇌피질을 180개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의 기능을 정리한 뇌지도 [사진 Matthew Glasser, David Van Essen, Washington University]

2016년 7월, 미국 워싱턴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대뇌피질을 180개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의 기능을 정리한 뇌지도 [사진 Matthew Glasser, David Van Essen, Washington University]

신체능력뿐만 아니라 정신능력도 강화할 수도 있다. 뇌 기술과 결합한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 기억력·의사소통 능력 등을 강화하는 길이 열릴지 모른다. 이미 페이스북·뉴럴링크 등은 AI 시대를 대비해 두뇌컴퓨팅 기술을 개발 중이다.

경제 도약 계기를 잡을 수도 있다. 예컨대 자동차 제조사는 운전자 뇌파를 탐지해 졸음·음주 운전을 방지한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뇌에서 특정 신경전달물질(도파민) 분비량을 측정해 기분 전환용 영상을 추천한다. 시험 전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정 주파수(Hz)를 유도하는 뇌파 조절 장치가 나올 수도 있다. 이미 P&G·유니레버 등은 자사 제품·광고를 볼 때 소비자 뇌에서 벌어지는 반응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뇌연구의 첨단을 걷는 한국인 과학자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바이오공학과에 종신교수로 재직 중인 이진형(40) 교수다. 이 교수는 현재 뇌전증(간질)과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강봉균 뇌연구협의회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은 “핵 보유국이 20세기를 주름잡았다면, 21세기는 뇌 기술 강국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고 단언하며 “뇌를 정복하는 국가는 사실상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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