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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부부가 함께 책 읽고 대화 … 아이도 덩달아 책 들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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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책 읽으면 생활 바뀐다

입동(7일)을 지나며 쌀쌀한 날씨 때문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겨울이야말로 책 읽기에 적합한 계절입니다. 솔직히 가을은 독서보다는 나들이에 좋은 계절이지요.

‘책 읽는 부부들’ 전하는 독서 효과 #경단녀들, 독서로 지역봉사 ‘자존감’ #‘함께 책 읽고 토론’ 부부모임 활발 #“바빠도 매일 규칙적으로 읽어야” #독서층 감소 … “1년에 1권 이상” 55%

누구나 ‘책 좀 읽어야 하는데…’라고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육아 등에 쫓겨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13세 이상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최근 나왔습니다. 이번 열려라 공부는 ‘책 읽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독서로 생활이 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하네요. 하루에 독서시간 2시간을 짜내는 비결도 소개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실내활동 시간이 길어진다. 서울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통계청은 독서인구(만 13세 이상 중1년간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가 10대 때는 73.8%지만 60세 이상은 27.4%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뉴스1]

날씨가 추워지면 실내활동 시간이 길어진다. 서울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통계청은 독서인구(만 13세 이상 중1년간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가 10대 때는 73.8%지만 60세 이상은 27.4%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뉴스1]

“자기 형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 둘째도 따라 하고 싶었나 봐요. 아직 글도 모르는데…. 호호.”

아홉 살, 일곱 살배기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맘 주영선(35·서울 하월곡동)씨. 얼마 전 둘째가 큰애 옆에 앉아 동화책을 펼쳐 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초등 2학년인 큰애와 달리 둘째는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씨와 남편 양승택(35)씨는 아이들 보는 데서 책을 많이 읽는다. 주씨는 “아빠·엄마가 모두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다 보니 아이들까지 책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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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녀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는 ‘어른’은 줄어들고 있다. 이는 통계청이 지난 7일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도 나와 있다. 독서 인구(만 13세 이상 중 지난 1년간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 비율이 54.9%로 2년 전보다 1.3%포인트 감소했다. 13세 이상에서 절반 가까이가 1년에 책을 1권도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통계청의 독서 통계에 잡히는 책은 잡지류, 교양서적, 직업(직무)과 관련한 서적, 생활·취미·정보서적 등이다. 교과서나 참고서는 제외된다.

아이들에게 민망한 현실이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독서 인구 비중은 줄어든다. 10대(13~19세)에선 73.8%인 독서 인구 비율이 20대(20~29세)에선 70.4%로 낮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감소해 50대에선 47.8%, 60세 이상에선 27.4%에 그친다. 어른이 될수록 책을 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서량은 ‘부익부 빈익빈’이다. 책을 읽는 사람 비율은 줄지만 이들 안에선 평균 독서량이 오히려 증가했다. 독서 인구 1인당 평균 독서량은 연평균 16.5권에서 2년 새 17.3권으로 늘었다.

주영선·양승택씨 부부는 2015년 책 관련 소모임에 참석한 계기로 꾸준히 책을 읽게 됐다. 그전엔 남편 양씨는 회사 생활에 쫓겨, 부인 주씨는 아들 둘을 키우느라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다. 주씨 부부는 책 관련 소모임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1월 ‘리딩 바이 북 토크(Leading By Book Talk)’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부부 세 쌍으로 시작한 이 모임 회원은 현재 50명 가까이 늘었다. 같은 책을 읽고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모여 토론한다.

두 아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주씨 부부의 이런 활동이 영향을 미쳤다. 부부는 “우리가 책 읽는 걸 보고 아이들이 독서를 즐기게 돼 뿌듯하다. 독서는 우리 부부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예전엔 “밥 먹었어?” “애들은?” 같은 일상적 대화만 주로 나눴다. 그러다 같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대화 소재가 다양해졌다. 1982년생 동갑내기인 부부는 지난달엔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함께 읽었다. 책 내용으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사회·경제·문화 등 분야로 넘어갔다.

주씨는 “책 내용으로 대화하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대화를 듣고 아이들도 책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꾸준히 독서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게 된 것도 이점이라고 주씨는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부정적 생각을 잘 떨치지 못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으며 걱정을 잊게 된다”며 독서 효과를 예찬했다.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독서를 하며 자존감을 찾기도 한다. 서울에서 초등 3학년 딸과 일곱 살 아들을 키우는 조승숙(41)씨가 이런 사례다.

서울 숭인초 학부모 독서 모임 ‘맘애(愛)담아’ 회원 들이 모여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 모여 독서토론을 한다. [사진 주영선]

서울 숭인초 학부모 독서 모임 ‘맘애(愛)담아’ 회원 들이 모여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 모여 독서토론을 한다. [사진 주영선]

조씨는 8년간 건축설계사를 하다 결혼해 딸을 낳고 2007년 11월 직장을 그만뒀다. 육아에만 전념하던 조씨에게 독서동아리 활동을 권한 건 서울 숭인초등교에 다니는 딸 박시은(10)양이었다. 지난해 딸은 엄마에게 “학교에 학부모 독서모임이 있는데 엄마가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맘애(愛)담아’라는 이름의 모임인데 회원들은 같은 책을 읽고 2주마다 모여 토론한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동화책도 읽어 준다. 조씨는 지난해 이 모임에 참여해 현재는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회원들과 함께 학교에서 ‘북 페스티벌’도 열었다. 이때는 학부모들이 100일 동안 책을 필사(筆寫)한 노트도 전시했다. 조씨는 지금도 매일 책을 필사한다. 집안일이 많아 시간이 나지 않을 땐 시 한 편이라도 꼭 노트에 옮겨 적는다.

조씨는 “딸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책을 좋아하는 모습에 힘이 난다. 나 자신도 책을 통해 학교·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학부모 모임 회원인 김진아(39·여)씨도 책을 가까이하게 된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3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이 집에서 책을 읽는 엄마를 보고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왜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책이 재미있으니까”라고 답했다.

그리고 얼마 뒤 딸로부터 ‘내가 엄마를 닮아 책을 좋아하는 거구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1천권 독서법』의 저자 전안나씨는 초등 2학년, 여섯 살배기를 둔 워킹맘이다. 14년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4년 전인 2013년 ‘3년간 책 1000권을 읽자’고 마음먹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10년이 되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이 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도전에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습득한 노하우를 전파하기 위해 책을 냈다. 전씨는 “누구나 독서의 중요성은 알지만 막상 바쁜 일상에 쫓겨 독서를 하지 못한다. 책을 읽으려면 일상 속에서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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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책을 읽으려면 틈새 시간을 찾아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15분, 일찍 출근해 30분, 점심시간에 간단히 밥을 먹고 45분, 퇴근 후에 30분씩 책을 읽으면 하루에만 2시간 책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또 “자기가 읽는 책 내용 속에 등장하는 다른 책을 잇따라 읽으면 한 분야의 지식을 깊이 쌓을 수 있고, 도서관에서 분야별로 골고루 책을 빌려 보면 관심 분야를 넓힐 수 있다”고도 했다. 전씨는 “3년간 1000권 읽기에 도전하는 나를 보며 코웃음 치던 남편도 내가 책까지 내는 것을 본 뒤로는 스스로 한 해 서너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독서의 기적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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