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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디지털 굴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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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02면

사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솽스이(雙十一)’의 기세가 무섭다. 이 행사는 중국 알리바바가 독신 남녀 대상의 쇼핑 이벤트로 시작됐다. 올해도 거래액이 28초 만에 10억 위안(약 1700억원), 3분 만에 100억 위안을 넘었다. 이날 매출은 25조원에 달해 미국 추수감사절(매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 다음 날 시작되는 블랙프라이데이 매출(지난해 7조원)의 세 배를 넘어섰다.

중국이 온라인·디지털 분야에서 미국은 물론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을 능가한 것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즘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식당이나 가게에서 현금을 잘 받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심지어 노점상이나 택시에서조차 현금을 내밀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는 없느냐”는 질문을 받기 일쑤다. 인터넷 포털로 시작한 알리바바는 온라인 쇼핑에 이어 모바일 결제로 영역을 넓혔다. 게임업체이던 텐센트는 가입자 5억 명인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각각 삼성전자와 맞먹는다.

중국의 ‘디지털 굴기(崛起)’는 역설적으로 빈약한 금융 시스템과 낮은 사회적 신뢰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거미줄처럼 깔린 초고속인터넷망을 바탕으로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 잡았다. 반면 전국에 유선망을 갖추기 어려웠던 중국은 무선 네트워크에 집중 투자했다. 중국의 이동통신 가입자는 13억 명을 넘었다. 물건 값을 치를 때 스마트폰으로 상점 점원이 내미는 QR 코드를 스캔하면 연결된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를 통해 상점 계좌로 대금이 이체된다. 위조지폐나 도난당한 신용카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거지들조차 목에 QR 코드를 걸고 구걸한다. 결제 시스템과 더불어 물류에 대한 투자도 쉬지 않는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京東)은 최근 쓰촨성에 185개의 드론 공항을 건설했다. 쓰촨성에서 만든 제품을 중국 모든 도시에 24시간 안에 배송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의 현실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금융권에 온라인으로 계좌를 하나 열려면 수십 가지 보안 프로그램을 깔다가 컴퓨터가 멈춰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드론 산업은 겹겹이 둘러친 규제 탓에 고사하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 금융산업을 뒤흔들 메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인터넷 전문 은행은 은산분리의 벽 앞에서 주춤대고 있다. 기존에 없던 기술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여는 것은 기존 관행과 규제의 틀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정치권은 기업과 시장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기업 경영자들도 소비자의 편익보다는 정부와 오너의 눈치만 본다. 이렇게 굳어버린 시각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한국에서 알리페이에 가입해 광군제에 참여해 본 국회의원, 장·차관, 최고경영진은 드물 것이다. 직접 경험해 봤다면 우리나라의 디지털 플랫폼이 이렇게 불편하고 누더기처럼 남루해질 때까지 지켜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이 이끄는 숙적 카르타고를 간신히 물리친 고대 로마는 위기감을 떨치지 못했다. 강경론자인 대(大) 카토는 원로원에서 싱싱한 카르타고산 무화과를 손에 들고 “이런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적이 뱃길로 사흘 거리에 있다”며 “카르타고는 반드시 멸망해야 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고 한다. 결국 로마는 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켜 카르타고를 지도에서 지웠다.

알리바바의 인터내셔널 온라인 쇼핑몰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대부분 무료로 집 앞까지 배달해 준다. 아직은 배송 기간이 3주 정도 걸리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택배 상자에 담긴 저렴한 중국산 전자제품과 의류·신발 등을 보면 카르타고산 무화과를 든 카토처럼 “우리 기업들은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사나” 하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과 더 높은 벽을 쌓고 더 강력한 규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겨낼 수밖에 없다. 중국의 디지털 굴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사흘 만에 배송되는 중국 제품과 서비스에 두 손을 번쩍 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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