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결혼식 날, 남편 필립공의 가족이 1명도 없었던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7.11.11 00:10

업데이트 2017.11.11 10:55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지난해 여왕의 90세 생일을 맞아 촬영한 기념 사진. [사진 중앙포토]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지난해 여왕의 90세 생일을 맞아 촬영한 기념 사진. [사진 중앙포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올해 91세를 맞아 생존하는 전 세계 군주 가운데 최장수 재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남편인 5세 연상의 에딘버러 필립공(96) 또한 지난 8월 공식 은퇴하기 전까지 70년에 걸쳐 여왕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공무를 수행해왔다.

필립공의 알려지지 않은 ‘외로운 소년기’
망명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10살부터 '가족의 정' 모르고 홀로 묵묵히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 비로소 행복 느껴

이따금씩 ‘깜짝 발언’으로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걸로 유명한 필립공은 꾸미지 않는 소탈한 성격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필립공의 소년기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겪은 수많은 비극과 파란만장한 생애는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로열패밀리를 그린 드라마 ‘더 크라운’(넷플릭스) 두번째 시리즈에서 필립공의 파란만장한 과거가 하나의 주제로 그려렸다.

주거지를 옮겨 다녀야 했던 외로운 소년시절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시작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의 가계도. 결국 두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으로 한 혈통인 셈이다. [사진 중앙포토]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시작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의 가계도. 결국 두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으로 한 혈통인 셈이다. [사진 중앙포토]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고르푸섬에서 태어났다. 그리스의 왕자이자 덴마크의 왕자였던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 가문의 앨리스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왕위계승서열 6위.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리스 게오르기오스 1세의 4남이었고, 게오르기오스 암살 후엔 필립공의 큰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가 왕위를 계승한 상태였다. 필립공의 할머니는 러시아 혁명 당시 군대에 처형된 로마노프 왕가 출신이다. 그리고 조부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9세다.

아내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찬가지로 필립공 역시 유럽 왕실 출신이지만 두 사람의 인생의 출발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정은 모두 사이가 좋고 행복했다. 1936년 엘리자베스가 10살 때 일어난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의 퇴위사건(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인 미국여성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한 사건으로 동생이자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을 제외하면 여왕의 인생에는 굴곡이 없었다.” 『Young Prince Philip(원제)』의 저자이자 영국 왕실 전문가인 필립 에드의 말이다.

그리스에선 1922년 쿠데타가 발발해 필립공의 백부인 콘스탄티노스는 왕위에서 끌어내려졌다. 당시 육군에 있던 필립공의 아버지도 반역죄로 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일가족은 파리로 도망친 뒤 10년간 생활했지만 생활은 몹시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아들을 사랑했지만 불안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필립공은 어릴 적 거의 부모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오랜 망명생활로 어머니는 신경쇠약을 앓았고, 형제들은 친구와 친척 집에 맡겨지기 일쑤였다. 어머니 앨리스는 1931년에는 신경쇠약을 일으켜 스위스의 사나트리움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아이들이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집을 나가 사라진 비참한 상황이었다.

4명의 누나들은 모두 일찌감치 독일 귀족들과 결혼해 정착했고, 아버지는 남부 프랑스로 떠나고. 필립공은 10살 때 이미 외톨이가 됐다. 10대 중반의 필립공이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가정에선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를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가정? 대체 그게 뭐냐”고 까칠하게 반문할 정도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아보내야 했던 학창시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성숙한 4명의 누나와 함께 촬영한 필립공의 어린 시절 사족사진. 세일러복을 입은 귀여운 남자 아이가 필립공이다. [사진 중앙포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성숙한 4명의 누나와 함께 촬영한 필립공의 어린 시절 사족사진. 세일러복을 입은 귀여운 남자 아이가 필립공이다. [사진 중앙포토]

필립공은 32년 여름부터 37년 봄까지 어머니를 만나기는커녕, 편지 한통 받지 못했다고 한다. 훗날 필립공은 “한마디로 그때 가정은 이미 붕괴됐었다. 어머니는 병으로, 누나들은 결혼해 출가했고, 아버지는 남부 프랑스로 가버렸다. 나 혼자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고 필립공을 돌봐준 이는 어머니 쪽 친척인 밀포드-헤이븐 및 마운트배튼 가문이다. 그들은 영국 왕실 등 많은 유럽 왕실과 인연이 깊은 집안이었다. 필립공은 영국 학교에 다녔고, 1년 정도 독일 학교에 다닌 후 바로 영국으로 돌아와 스코틀랜드의 기숙학교이자 명문 고든스타운에 입학했다.

그리고 또다시 비극이 일어난다. 필립공이 16세 때, 누나인 세실리아와 매형 그리고 두 명의 조카들이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수개월 뒤엔 작은아버지이자 필립공의 후견인이었던 조지 마운드배튼경이 46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별세했다. 당시 필립공에게 이들 소식을 알린 고든스타운의 교장 쿠르트 한은 “(필립공은) 슬픔을 남자답게 묵묵히 받아들였다”고 회상했지만, 한 동급생은 인디펜던트지에 “당시 필립공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왕과의 만남 이후 비로소 찾은 인생의 행복
1947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치러진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식 사진. [사진 중앙포토]

1947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치러진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식 사진. [사진 중앙포토]

학교를 졸업하고 영국해군에 입대, 작은아버지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의 권유로 다트머스에 있는 영국해군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18살의 사관후보생 필립공은 사촌관계인(필립공과 엘리자베스 공주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 13세의 엘리자베스 공주를 만났다. 그리고 7년 후인 47년에 두 사람은 약혼을 발표했다.

인생에 다시없을 행복한 시기였지만 잃은 것도 많은 때다. 필립공의 아버지는 44년 숨졌고, 어머니는 전쟁 중인 그리스로 귀국한 상황. 어머니는 당시 나치점령 하에서 유대인 난민보호 활동을 했다지만, 매형들은 모두 독일인. 결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필립공과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에 필립공의 가족은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우울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던 필립공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고 비로소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1월 20일 결혼 70주년인 플래티넘 웨딩일을 맞는다. [사진 엘리자베스여왕 인스타그램]

우울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던 필립공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고 비로소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1월 20일 결혼 70주년인 플래티넘 웨딩일을 맞는다. [사진 엘리자베스여왕 인스타그램]

필립공은 결혼 이후 비로소 행복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격이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필립의 ‘솔직함과 자립심’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교제기간이던 46년 여름, 필립공은 미래의 약혼자인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승리한 것, 심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그리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을 느낀 것은 그 어떤 것도 상쇄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개인적인, 아니 세계적인 고뇌와 고통은 아주 사소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지난 8월 필립공은 모든 왕실 공무에서 공식 은퇴했다. 70년간 여왕을 보필하고 흔들림 없이 영국 왕실을 지켜온 그의 성품은 성장기에 겪은 온갖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얻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 상대에 대한 배려, 그리고 조국에 대한 충성이었을 것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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