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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유전자가위 … 실패해도 한국에서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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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김환영의 지식의 현장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유전자가위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유전체편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점심 시간에도 연구원들이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유전자가위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유전체편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점심 시간에도 연구원들이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승패를 다투는 현장은 치열하다. 땀이 분출하는 스포츠 경기나 피가 튀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치열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랩(lab)이 대표하는 ‘과학 전쟁’의 현장은 겉으로만 봐서는 너무나 고요하다. ‘따분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눈에는 잘 안 보여도 과학이라는 ‘빙산’의 수면 밑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전쟁보다도 더 치열하다. 분쟁·갈등의 현장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오해나 불신, 연구를 제약하는 기존의 법과 제도와 맞서야 한다. “과학은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야말로 우리에게 민족주의를 요구한다. ‘과학 민족주의’ 없이 글로벌 과학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질병치료 ‘유전자혁명’의 최전선 #한국·미국에만 역동성·원천기술 #의외로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 #바로 그게 세상 바꿀 파괴력 #“미국 가서 성공하면 국부유출” #아직은 한·미 패권 경쟁 팽팽

‘과학 민족주의’가 절실한 분야는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쉽게 말하면 DNA라는 ‘지퍼’가 고장 났을 때 이빨이 나간 부위에서 특정 유전자만 잘라내고 새로운 지퍼 조각으로 갈아 끼우는 유전자 편집(editing), 즉 ‘짜깁기’ 기술이다. 유전자 편집 시장은 2025년 81억 달러(약 9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질환·정신질환·암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분야다.

유전자가위 기술의 프런티어를 찾아갔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세계 최초로 인간세포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곳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서울대 정문을 통과하고 300여m를 직진했다. 오른편에 503동이 보였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유전체교정연구단(단장 김진수 )이 있는 곳이다.

우선 김진수(53) 단장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책상 위에는 ‘네이처’ ‘MIT 테크놀로지 리뷰’ 등 유전체교정연구단이 이룩한 연구 성과가 실린 과학 저널들이 놓여 있었다. 유전자가위 자체와 그 활용법을 연구하는 유전체교정연구단에 대해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유전자가위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유전체편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사진은 김진수 단장. [최정동 기자]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유전자가위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유전체편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사진은 김진수 단장. [최정동 기자]

인터뷰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유전자가위 기술이 ‘진입장벽이 낮다고 보면 낮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 일반인도 몇 십만원 주고 유전자가위를 살 수 있다. 김 단장은 “바로 그래서 이 연구 분야가 파괴력이 있고 의미 있다. 실험실에서 널리 쓰이게 된 기술은 결국 실험식 밖 세상을 바꿨다”고 했다. 예전에는 전 세계 5개 연구실만 1세대 유전자가위를 다뤘다. 이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에 사회를 바꾸는 ‘혁명’이 시작됐다. 단, 진입 장벽은 특허다. 특허가 없으면 상업화를 못하기 때문이다. 유전체교정연구단은 28건의 특허가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면 유전체교정연구단의 차별성은 뭔가”라는 질문에 김 단장은 듣자마자 이해하기는 힘든 답을 했다. “우리는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발표해 유전자가위를 누구나 다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터뷰를 마친 후 유전자가위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현장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실험실에는 연구원들이 자리에서 묵묵히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연구원의 남녀 비율은 반반이라고 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대에서 남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남학생·여학생 중 어느 쪽이 더 성실한가”라고 물었더니 김 단장은 “사람마다 다르지 성별에 따른 차이는 없다. 사람에 따른 차이는 진짜 크다”고 답했다.

연구실에서 번쩍거리는 장비나 거창한 실험은 보이지 않았다. 실험실 내부는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연구원들은 “유전체를 변형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포를 추출, 변형하는 반복적인 실험을 하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거창한 실험은 없다”고 했다.

김 단장이 웃으며 “단순하고 반복된 것이 쌓여 노벨상도 받는 게 아니겠나”라고 답했다. 노벨상에 대한 김 단장의 생각을 물었다. 이렇게 대답했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과학자가 전 세계에 수천 명이 있다. 일단 장수해야 받을 수 있다. 노벨상은 과학자에게 복권당첨이라고 할 수 있다. 복권당첨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듯 노벨상은 과학자의 목표가 아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엔 여전히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가 남아 있어 연구개발을 제약하는 부분이 많다”며 “미국의 경우는 과학기술계가 의회에 직접 발의해 예산을 편성받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에서 전문가들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연구원인 박사과정 학생에게 언론에 특별히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학생은 “과학 기사를 많이 써주면 도움이 될 듯하다”고 답했다. 김 단장은 이렇게 첨언했다. “사설에서 다뤄줘야 한다. 일반 기사는 아무리 많이 나와도 입법에 반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 알았는데 사설에 나오면 바로 연락이 와 ‘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는 등의 문제를 문의한다.”

한 연구원에게 “유전자가위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분야에 대한 회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개발된 유전자 관련 툴(tool) 중에서는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답했다.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는가. 예컨대 의대로 갔어야 했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라고 물었더니 연구원은 “처음부터 의대 생각은 없어서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다른 연구원에게 “어떤 때 제일 기뻤는가”라고 묻자 “제가 연구한 성과가 논문으로 나와 평가받을 때”라고 답했다.

유전체가위 기술을 직접 적용시킨 쥐를 보기 위해 105동 유전공학연구소로 향했다. 건물 4층에 위치한 유전체교정연구실 또한 조용한 분위기가 503동 실험실과 다를 바 없었다. 실험실 내에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가 유전체가 교정된 실험용 쥐를 볼 수 있었다. 실험용 쥐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귀여운 ‘햄스터’ 크기였다.

세 마리의 검은색 쥐들은 조그마한 우리 밖으로 뛰쳐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담당 연구원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밖으로 나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은 사실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다. 미국에서는 교수가 창업하면 벤처캐피털이 수천만 달러를 투자한다. 우리는 10억원 받기도 힘들다. 우리도 교수와 학생들이 창업해 ‘재벌’이 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도 ‘생명윤리법’ 개정 등 ‘건전한’ 한탕주의 성공 사례가 가능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올해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인 김진수 단장은 우리나라 유전자가위 기술이 미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현재로서는…. 유럽의 연구 인프라는 좋은데 역동적이지 않고 중국은 원천기술이 없다. 그는 유혹적인 제안도 받았지만 “미국 가서 성공해 나스닥에 상장하더라도 이는 국부유출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하더라도 한국에서 실패하고 싶다. 물론 실패가 목표가 아니다. 여기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김환영 논설위원

※이 기사의 취재에 이유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