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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로스쿨'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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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먼저 로스쿨 입학 정원을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 수보다 약간 상회하도록 정한다는 입장의 논거를 살펴보면, 대체로 우리 법률시장의 구조적 문제점과 그에 따른 법률 수요 부족 및 변호사 양산에 따른 사회적 문제 야기 가능성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로스쿨 입학정원을 이보다 더 크게 늘려야 한다는 입장의 논거는 로스쿨 제도를 표방하면서 입학정원을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수 정도로 동결할 경우 사실상 사법교육 개혁의 의미를 크게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입학정원을 사법시험 합격자수 수준으로 제한한다는 의견도 그 논거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사법교육 개혁이 논의된 애초의 취지가 현행 사법시험 제도의 폐기를 통한 법학교육 정상화 및 양질의 법률서비스 확대 공급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현행 법과대학을 로스쿨로 바꾸면서 그 입학정원을 또다시 사법시험 합격자수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사법시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부담만 추가시키는 결과가 된다. 기존의 법과대학과 달리 로스쿨 제도가 실시되면, 대학 졸업자들이 또다시 3년간 대학원과정에 해당하는 로스쿨을 다녀야 한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법률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경제적.시간적으로 큰 부담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담을 추가하면서도 굳이 로스쿨을 도입하려던 데는 이유가 있다. 기존의 사법시험 시행 결과 전공을 불문하고 많은 학생이 사법시험공부에만 매달리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 대학 교육의 형해화(形骸化), 이에 따른 법조인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격적 덕목 교육의 부재, 상당수의 고시 실업자 양산 등의 부작용을 해결하고 나아가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합리적 비용으로 국민이 제공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로스쿨 입학 정원을 사법시험 합격자수 수준으로 동결한다면 결국 법률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이번에는 대학 4년 내내 사법시험 대신 이름만 바뀐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에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방안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의 견해로는 로스쿨 입학정원을 사법시험 합격자 수보다 대폭 늘리고, 아울러 로스쿨 졸업자로서 소정의 법률적 소양을 갖춘 사람에게는 모두 변호사 자격을 수여해야 한다고 본다. 로스쿨 입학정원 논의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로스쿨을 도입한다고 하면서도 변호사 자격 부여는 기존의 상대평가 방식을 고수하려는 데 있다고 보인다. 학생들이 어렵게 로스쿨에 입학해 3년을 더 공부했는데도 또다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절대적 평가가 아닌 상대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결국 로스쿨 졸업자 중에서 상당수는 변호사로서 필요한 기초적 소양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끝내 탈락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처음부터 입학정원까지 동결한다면 앞서 본 바와 같이 현행 사법시험이 로스쿨 입학시험으로 명칭만 바뀌면서 법률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과중한 추가 부담만 부과하는 것이다. 따라서 로스쿨 입학 정원은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상관없이 대폭 늘리고, 로스쿨 졸업자로서 소정의 법률소양을 갖춘 사람은 모두 변호사 자격을 부여해야만 로스쿨제도 도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본다.

최윤희 건국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