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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국가정보원이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되는 날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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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이스라엘과 이란은 중동의 적대 국가다. 이란이 핵 개발을 본격화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이란의 핵과학자 5명이 암살당했다. 그때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렇지만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려 누구도 체포하진 못했다. 이란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안보부(MOIS)도 맞테러를 감행한다고 했지만 깜냥이 안 됐던 모양이다. 솜씨가 서툴러 정체를 들키거나 모사드의 정보 수집 능력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이란은 2015년 7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과 ‘7자 협상’을 벌여 핵 프로그램의 일부 폐기 및 동결을 경제제재 해제와 맞바꾸기로 합의했다. 암살은 범죄다. 하지만 자국민의 생존과 국가 이익을 지키려는 모사드의 첩보전 수행 능력을 내심 부러워하는 나라가 적잖다.

진보 정권 10년, 보수 정권 9년 엇갈린 대북 정책에 혼돈 #정보 요원들 정권 따라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 벗게 해야

1948년 한 해에 정부가 수립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의 처지는 많이 다르다. 분명한 건 한반도의 상황이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 비해 결코 낫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5차 핵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데다 수소탄 실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가 북한의 핵 도발과 공포정치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의 주시한다.

요즘 자고 나면 쏟아지는 국가정보원 ‘적폐’ 뉴스를 접하다 보면 북한의 핵 개발이 현 단계에 이를 때까지 우리 국정원은 뭘 했나 궁금해진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해외에서 모사드와 유사한 첩보전이나 대북 공작을 조금이라고 했는지 묻고 싶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의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을 보면,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4년간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씨의 지시로 댓글부대를 운영하며 노골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을 듯싶다.

이 기간에 야권 정치인 비난 여론 조성, 정부에 비판적인 연예인 방송 하차,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 작성 등의 공작이 기획·실행됐다. 그러다 보니 대북 정보력은 급격히 약화됐을 것이다. 휴민트(대북 인적 정보)도 무력화됐다.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흘러간 40억원대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원래 대북 해외 공작에 써야 할 돈이다. 특활비의 99.9%는 내국인 상대 공작이 아닌 대북 정보원·협조자 등 이른바 ‘망원’ 확보에 쓰여야 한다. 이러니 “김대중·노무현 진보 정권 10년 동안 천문학적인 자금을 북한에 퍼주기 하더니, 국가 안보라도 튼튼히 해야 했을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10년 가까이 특수활동비를 국내 공작 정치나 청와대 상납금으로 전용했다. 도긴개긴이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의 추락에는 권력자들의 책임도 크다. 북한이라는 실체는 변함없는데 남한은 정권 교체 때마다 북한을 적대국과 대화 상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좌파 정권 10년 기간 잘나간 사람은 ‘부역자’ 취급하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도 ‘학살’ 인사가 반복되면서 공작 능력 등 정보요원의 전문성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2011년 무기 구매차 방한한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서울 롯데호텔)에 우리 정보요원이 침입해 협상 전략 자료를 빼내다가 발각된 사건은 아마추어리즘이 빚은 참사였다. 안보 불안이 60년 넘게 지속되면서 국민 사이엔 내성이 생겼다. 북한의 공포정치도 다른 세상 일이고 영화같이 느껴진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요즘 우리처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치부와 기밀을 속속들이 드러내 발가벗기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을 제치고 국정원이 개혁 대상 1호로 대체된 느낌마저 든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적폐청산이 “정치 보복이 아니라 국가 기강을 바로잡자는 것”이라면 청산의 속도는 빠를수록 좋다. 국정원 맨들을 더 이상 정권에 따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놔둬서는 안 된다. 영화의 킹스맨이나 007, 현실의 모사드처럼 국가 안보의 정예요원을 기르는 국정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