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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생존의 경제학 7가지 포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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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조윤제 주미 대사가 한국의 경제·사회·정치의 개혁과제를 정리한 『생존의 경제학』을 최근 출간했다. 서강대 교수 정년 퇴임을 앞두고 2년 넘게 준비한 책이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주미 대사로 내정되는 바람에 책 출간을 고민했지만, 시의성을 감안해 그냥 냈다고 한다. 외교관이 아닌 경제학자 조윤제의 주장인 셈이다. 저자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소장을 맡아 현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 설계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래서 정부가 내세우는 ‘사람 중심 경제’의 배경과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재벌개혁, 사회안전망 강화, 소득세·법인세 인상 등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거나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과 저자의 주장이 상당 부분 겹쳐 있다. 이런 동어반복은 빼고 우리 사회가 더 고민해야 할 저자의 나머지 제언을 일곱 가지 포인트로 모아 봤다.

보수·진보 넘어서 사회 전반 대혁신·대타협해야 #연줄사회 ‘마당발 신화’와 음주문화도 개혁 대상

첫째, 우리 사회 전반의 대혁신이 필요하다. 부분적인 개혁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 지도자와 여야 정치권이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통찰력과 장기적 관점을 갖고 국민과 합심해 적어도 10년 이상 일관성 있게 제도 개혁과 정책 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둘째,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단임 정권 탓에 우리 사회 전반의 시계(視界)가 단기화했다. 정권이 바뀌면 공직자·공공기관장·단체장뿐만 아니라 장기적 안목으로 국가정책을 연구해야 할 국책연구원장도 바뀐다. 짧은 임기 내 가시적 목표만 추구하다 보니 단기 성과에만 신경 쓴다.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사회적 대타협을 하고 새로운 국가 지배구조를 세워야 한다.

셋째, 공공부문에선 재정 지원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가능하겠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쉽지 않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을 높여 기업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저성과자 해고를 허용해야 시장 기능에 의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원활해진다. 노조의 지나친 쟁의 행위에 대항해 사 측이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의 허용 기준을 다소 완화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대기업 강성노조도 문제지만 노사관계 관리에 소홀하거나 도덕적 권위가 부족해 규율을 세우지 못하는 경영진도 문제다.

넷째, 중소기업 정책을 새로 짜야 한다. 지원과 보호 위주의 정책은 중소기업의 혁신을 촉진하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을 저해한다. 중소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근로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기업이며 중소기업 경영자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다섯째, 정부가 국가 행사나 주요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간기업에 손을 내미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혁신센터가 대표적이다. 준조세 성격의 이런 부담을 줄이는 대신 차라리 법인세율을 높여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투명하고 당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여섯째, 경쟁 없이 경쟁력이 향상될 수는 없다. 한국은 실력과 전문성으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학연·지연 등 각종 연고를 중시하는 연줄 사회이고, 10대나 20대 때 합격한 시험 덕분에 평생의 지위와 소득을 누리는 지대(rent) 사회다. 두루 인적 네트워크가 좋은, 소위 ‘마당발’이 성공하는 사회는 경제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실력에 의한 경쟁 기회를 축소해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다.

일곱째,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한국 근로자가 오래 일한다지만 집중도는 떨어진다. 특히 잦은 음주·회식 문화가 문제다. 과음하는 문화가 일상화된 직장에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원하는 여성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관료·언론인·정치인·지식인이 선진국 전문인처럼 술자리나 경조사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 분야에 시간을 더 투입해야 한국이 발전한다. 뼈아픈 지적들이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