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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알파고도 넘을 수 없는 의사의 '이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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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연주곡은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이다. 이곡은 여섯 개의 모음곡으로 전곡을 들으려면 세시간 이상 걸린다. 전곡을 들어보고 싶으면 네덜란드 출신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의 연주로 들어봤으면 한다.

유재욱의 심야병원(4) #의학은 과학, 의술은 예술 영역 #의료는 환자 이롭게 하는데 초점 #알파고는 의술 절대 넘지 못해

비스펠베이는 세계 각국을 돌면서 바흐 무반주첼로조곡 전곡을 연주한다. 큰 무대에서 첼로 하나만 들고 청중과 대화하는 모습은 고독함과 장엄함이 깃들어있다. 1990년부터 20여년간 세 차례나 같은 곡을 리메이크해서 음반을 냈다니 그의 꾸준함과 학구적인 면에 경의를 표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어떤 분야에서 인정받고 최고라는 찬사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른바 ‘만 시간의 법칙’이다. 비스펠베이도 이 한 곡만을 위해 1만 시간 이상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책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중앙포토]

책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중앙포토]

오늘 기억나는 환자분은 전남 고흥 녹동에서 오신 아주머니인데, 멀리서 일가족이 총출동했다. 좁은 진료실은 아주머니와 아저씨, 따님, 손자로 꽉 들어찼다. 가 본 분은 알겠지만 녹동항은 소록도를 바라보고 있는 항구로 고흥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한번 나오려면 정말 힘들다. 이분 가족도 전날 순천까지 와 하루 묵고 다음 날 아침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웬만한 외국에서 오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 셈이다.

걸음걸이 보고 치료여부 감잡아  

진료실로 들어오는 아주머니의 걸음걸이를 살펴보니 걷는 것이 몹시 불편한 모양새다. 걸음걸이로 봐서는 관절도 많이 손상됐고, 무릎도 많이 변형된 분이다.

나도 의사가 된 지 20년 넘어가다 보니 그동안 진료 시간만 어림잡아 5만 시간을 훌쩍 넘긴다. 경험이 많은 의사는 다 그렇겠지만, 이제는 환자가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과연 내가 고칠 수 있는 병인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아 이거 만만치는 않겠구나’ 속으로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머니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이다.

무릎 통증. [중앙포토]

무릎 통증. [중앙포토]

“나가 물팍이 허벌라게 아파갖고 못 걸어다녀븐지가 겁난디. 거시기가 여가 잘 고친다해서는 꼭두새벽부터 와부렀네.”
“아 그 거시기 엄마는 여서 한방 맞았는디 팔팔 날라다녀부러.” “외국도 가보도 못하던 것이.”
“아주머니~ 그 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치료 좀 받아 보셨어요?”
“용하다는 데는 내가 안가본데가 없으.” “근디 한방 맞으믄 좀 살겄다가도 다시 또 허벌라게 아파불고 하니 죽겄어.”
“혹시 가셨던 병원에서 수술해야 된다고 얘기는 않던가요?”
“가는 데 마다 나한테 다 수술하라 하데, 나는 늙어서 수술은 무시라.“ “수술안하고 고친다든만. 나도 한번 해바라.”
‘…’

난감한 상황이다. 일단 멀리서 소개로 온 분은 동네에서 지나가다가 간판보고 들어오신 분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일단 병원에 오는데 걸리는 시간과 차비만 계산해봐도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서는 오기 쉽지 않다. 당연히 살고 있는 지역에 용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을 것이고, 갖가지 치료와 검사도 다 받아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분한테는 여태까지 써온 치료법 말고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미 여러 번 받아봤지만 효과를 못 본 치료법을 다시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았다면 그 만큼 심한 상태일 텐데 환자는 수술을 원치 않으니 치료가 녹녹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치료. [사진 Pixabay]

치료. [사진 Pixabay]

게다가 이분의 경우 아는 사람이 여기서 한 방에 나았다고 듣고 온 상황이다. 치료 한 번에 좋아진 분은 여기저기 병원 홍보를 하기 마련인데, 당연히 ‘거기 가서 딱 한번 치료받았더니 나았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나도 한번 치료받으면 낫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치료가 잘 돼 점점 좋아지고 있어도 ‘친구는 한번 만에 완전히 나았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려?”하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물론 환자를 보다보면 한 번에 기가 막히게 좋아지는 분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고, 대부분 여러 번에 걸쳐 치료하면서 천천히 좋아지게 마련이니 이 부분도 잘 말씀드려 이해시켜야 한다.

“침대에 한번 누워보세요.” 환자를 침대에 눕혀 무릎을 만져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이미 쓸 만큼 쓴 무릎이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따지면 말기에 가깝다고 보인다. 현재 상황에서 고흥에서 먼 길을 온 아주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멀리서 온 가족들에게 단칼에 못 고친다고 하고 돌려보내기도 그렇다.

이럴 때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상태는 수술을 해야 하니 나는 치료할 것이 없다’고 말해 실망감을 안고 먼 길을 돌아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최선(最善)의 치료는 아니지만 차선(次善)의 치료를 권할 것인가?

의학 vs 의술 

알파고.  [사진제공=알파고 사이트 화면 캡쳐]

알파고. [사진제공=알파고 사이트 화면 캡쳐]

여기에 의학(醫學)과 의술(醫術)의 묘미가 있다. 의학은 과학의 영역이고 의술은 예술의 영역이다. 의과대학에서는 환자에 대한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도록 훈련받는다. 환자의 진료를 의학적으로 접근을 하면 통계학적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 줄 수 있겠지만, 너무 단호하고 냉정해 환자는 서운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의술은 환자와 공감하고 환자의 형편을 이해하려 애쓴다. 하지만 너무 의술에만 치우치다 보면 환자에게 최선의 결정을 해주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아주머니 무릎은 지금 많이 안 좋아서 지금 수술을 받아도 이상 할게 없는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멀리서 오셨고 수술도 싫다고 하시니 제가 한번 최선을 다해 볼께요.” “치료를 두어번 받아보시고 만약 그래도 안 좋아지시면 수술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결국 의료의 본질은 ‘환자를 이롭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의학과 의술이 조화롭게 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의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최신 치료법이나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환자를 이롭게 하려고  고민하는 자세다. 이 부분은 알파고가 결코 넘 볼 수 없는 의사 본연의 영역일 것이다. 알파고에는 환자가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가정형편이 어떤지, 수술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에 대한 고려는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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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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