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금 돌려 막기' 걱정 끝, 자리 잡은 체크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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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정모(38) 과장은 최근 신용카드를 서랍에 넣어두고 대신 체크카드를 갖고 다닌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용카드로 이런저런 물건을 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다. 그는 "체크카드는 예금잔액 이상으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헤픈 소비가 줄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32.여)씨도 매달 예산을 넘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얼마 전부터 체크카드를 주로 쓰고 있다. 김씨는 "장보러 가서 물건을 집을 때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금융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통장에 남아 있는 잔액만큼만 물건을 사거나 현금을 뽑아 쓸 수 있어 주머니 사정에 맞게 씀씀이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에 넘치는 신용카드 지출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는 인식도 체크카드 확산에 한몫을 하고 있다.

비씨카드의 체크카드 발급 건수는 3월 말 632만 장으로 지난해 말 525만 장보다 20% 늘어났다. 사용액도 올 1분기 87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0%가량 불어났다. KB카드 역시 지난해 말 140만 장이던 체크카드가 3월에 190만 장으로 뛰었다.

비씨카드 채규영 과장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합리적인 지출이 가능하고, 소득공제와 포인트 적립 등 신용카드와 비슷한 부가서비스를 받는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여신금융협회 이보우 박사는 "한국 소비자들은 카드를 안 써도 사용한도가 늘길 원하는 '신용 선호'형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신용불량 문제가 부각되면서 체크카드 이용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체크카드를 발급하는 카드사와 은행 입장에선 고객이 카드를 사용하면 곧장 대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연체 위험이 없다는 게 매력이다.

체크카드 보급이 늘면서 고객 입맛에 맞춘 틈새 상품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나은행은 25일부터 국내 체크카드 중 처음으로 해외 가맹점에서도 물건을 살 수 있는 '하나비바 체크카드'를 발급한다. 비자카드와 손잡고 해외 여행지에서 결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해외에선 체크카드로 현금만 인출할 수 있었다. 하나은행 카드영업추진팀 원상연 차장은 "해외 계좌 개설이나 카드 발급이 어려운 유학생과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카드는 최근 후불 방식의 교통카드 기능을 얹은 'KB교통 체크 IC 카드'를 출시했다. 기존 교통 체크카드는 매번 돈을 충전해야 하지만 이 카드는 보증금을 내면 후불 결제가 가능케 했다.

롯데카드도 소득이 낮은 젊은이들에게 체크카드가 호소력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다양한 할인서비스를 첨가한'영플 카드'를 내놓았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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