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이 '소설 인생' 30년 만에 처음 탄원서 쓴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2017.10.30 16:56

업데이트 2017.10.31 05:59

공지영 작가(사진 가운데)가 30일 오후 2시 전주지법 정문 앞에서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인 40대 목사 A씨(여)와 40대 전직 신부 B씨 등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사진 가운데)가 30일 오후 2시 전주지법 정문 앞에서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인 40대 목사 A씨(여)와 40대 전직 신부 B씨 등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타지에서 온 제가 보기에는 '여왕'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법이 없나요? 누가 비호하는 겁니까?"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도가니』 등을 쓴 공지영(54) 작가는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인 40대 목사 A씨(여)에 대해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30일 오후 2시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 정문 앞에서 평화주민사랑방·전북녹색연합 등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다.

사기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남녀 성직자
허위 경력으로 장애인 복지시설 설립해
수억원 기부금 가로채…불법 봉침 시술도
女목사 "아이 5명 입양해 홀로 키운다" 홍보
공지영 "검찰, 사건 축소 기소했다" 의혹
아동학대·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 빠져
"女목사, 여왕 보는 듯. 누가 비호하나"

A씨는 40대 전직 신부 B씨와 함께 '미혼모로서 입양아 등 5명을 홀로 키우고 있다'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 등의 거짓말로 수억원의 후원금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으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다. A씨는 정부가 발급한 의료인 면허 없이 2012년 7~8월 자신이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직원 2명의 얼굴과 배 등에 봉침(벌침)을 시술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받고 있다.

공 작가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로 "검찰의 축소 기소 의혹"을 꼽았다. 그는 "(A씨가) 봉침을 성기에 시술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빌미로 돈을 강탈해 간 명백한 의료법 위반, 어떻게 보면 매매춘법(성매매특별법) 위반이 될 수 있는 게 제가 인지한 것만 10건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검찰에서 기소한 건 A 목사가 연습 삼아 자기 사무실에서 직원을 상대로 한 단 한 건"이라고 덧붙였다.

공지영 작가(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30일 오후 2시 전주지법 정문 앞에서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인 40대 목사 A씨(여)와 40대 전직 신부 B씨 등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30일 오후 2시 전주지법 정문 앞에서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인 40대 목사 A씨(여)와 40대 전직 신부 B씨 등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 작가는 "검찰이 (A씨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건을 축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수사관의 제보였다"며 "(이런 지시는) 전 정권에 이뤄졌지만 이 정권까지 계속 연장되고 있는 것을 규탄한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물품을 전부 공개하라"고도 했다.

공 작가는 외압의 배후에 대해 "현재 이 지역 출신의 유명 정치인 5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고 이분들이 수사를 축소하도록 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 작가는 '아동학대 문제'도 제기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초 A씨는 입양한 아이 3명과 친자 1명 등을 지난 2011년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C씨(여) 부부가 운영하는 전주시내 모 어린이집에 주·야간 24시간 맡겼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C씨 남편 D씨(52)도 '더 이상 학대받지 않고 환한 미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참석했다.

공 작가는 "아동학대 문제는 이 사건에 손을 떼지 못하고 뛰어든 가장 큰 이유"라며 "A씨 등이 아동학대로 기소가 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A씨는) 배꼽도 떼지 않은 아이 둘을 입양하자 마자 놀이방(C씨 부부의 어린이집)에 맡기고 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자기가 키우는 것처럼 (SNS에 올리는 등) 사기 행각을 하고 모금을 했다"며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물품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은 5년 동안 양육해 준 사람들(C씨 부부)을 부모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A씨는) 호적상의 부모라는 이유로 5년간, 1년 365일 중 360일을 키운 이분들에게서 아이들을 강탈해 간 상태"라고 꼬집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 작가는 "A씨는 입양한 아이들에게 각각 뇌종양과 뇌암이 걸렸다고 거짓말까지 시켜서 각각 3000만원과 3500만원이라는 돈(수술비)을 모금했다"며 "A씨 등은 아동학대죄로 기소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A씨는 (입양한 아이들과 달리) 자신의 배로 난 아이들은 밤에 데려가 재우고 있는 형편"이라며 "다른 건 몰라도 재판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A씨가 다른 어린이집에 양육을 맡긴) 아이들이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양육자들(C씨 부부)이 보호할 수 있는 판단을 법원이나 검찰에서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공 작가는 "A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탓에 증인들에게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 치면서 '우린 검찰에도 손이 닿아 있다. 이번에는 형식적으로 (재판을) 하고 벌금 정도 내고 (나중에) 주간보호센터(장애인복지시설)를 차릴 건데 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 작가와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전주지법 민원실을 통해 A씨 등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 360여 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공 작가는 별도로 탄원서를 작성했다. 그는 "저는 올해 소설 쓴 지 30년 됐다"며 "평생 처음으로 탄원서를 썼는데 제 작가 이력에 이정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재판장님께 사적이고 긴 탄원서를 썼는데 여기서는 밝힐 수 없지만 사건이 잘 해결되면 언젠가는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장애인 시설 신축 공사와 사단법인 변경 명목으로 후원금 1억6500여만원을 가로채고,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고 1억4600만원을 모금한 혐의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사회복지시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것처럼 허위 경력증명서를 꾸며 전주시로부터 장애인 복지시설 신고증을 받았다. A씨가 2010년 12월 전주에 문을 연 장애인 복지시설에는 장애인 10여 명이 생활해 왔다. 하지만 A씨 등의 비리가 검찰 수사로 밝혀지자 전주시는 지난 18일 A씨가 설립한 장애인 복지시설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전북도도 지난 23일 A씨가 대표로 있는 장애인 관련 협회에 대해서도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말소했다.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공 작가는 이번 재판을 받는 B씨와 악연이 있다. B씨는 천주교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2015년 7월 신부직을 잃었다. 공 작가는 당시 본인의 SNS에 "B씨가 천주교 교구에서 면직당했으니 후원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일로 B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공 작가는 2년 만인 지난 7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A씨는 B씨의 면직 사유인 성추문에 등장하는 당사자다. 자칭 '봉침 전문가'인 A씨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전직 국회의원 등 유명 정치인을 비롯해 종교인·공무원·장애인 등에게 봉침을 시술하고 일부 남성에게는 성기에 봉침을 놓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 정윤현 판사가 심리하는 다음 4차 공판은 내달 24일 오후 3시 이 법원 3호 법정에서 열린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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