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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홍준표, 서청원 주연의 막장 드라마!

중앙일보

입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의원들이 4박 5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지난 28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의원들이 4박 5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지난 28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해외국정감사 일정으로 출국했던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해외국정감사 일정으로 출국했던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는 자멸했다. 최순실과 관련한 뉴스가 터져나오던 초기 시점 박 전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라는 자조는 아버지의 후광 빼고는 변변한 자질도,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오르지 말았어야 할 자리에 올랐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무능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어떻게 결딴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 때 많은 국민들은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나” 라는 패러디 자조로 그녀의 무능과, 무능을 은둔적 유능으로 포장한 정치적 사기를 질타했다. 이 질타 속에는 정치적 포장술에 속아 넘어간 유권자 과반의 회한, 사기에 가까운 포장술을 간파해내지 못했다는 무력감, 그리고 가장 치욕적인 방식으로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 그녀에 대한 분노가 녹아 있다.

 돌이켜보면 많은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그녀의 복심으로 여겨졌던 전여옥 전 의원이 튕겨져 나온 사실, 이혜훈 의원, 진영 의원과 유승민 의원 등 그녀의 정체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던 핵심 측근들이 결국 그녀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를 간과했다. 선거 유세 중 커터 칼로 뺨을 공격당한 테러의 혼란 속에서 “대전은요?” 물은 그녀의 질문을 (이제와 보니) 말도 안 되는 해석으로 우상화를 부추긴 언론의 간교함도 국민의 눈을 가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보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편견에 기초한 ‘보고 싶은 사실’ 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박근혜’를 본 것이 아니라 ‘누군가 포장한 박근혜’를 보았고, 누군가 포장한 박근혜 레토릭에 세뇌되어 ‘보고 싶은 박근혜’를 본 확증편향의 포로였다.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쫓겨나고 있다. 조문규 기자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쫓겨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최순실’과 ‘세월호’는 박 전 대통령의 무능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최순실만 없었어도, 세월호만 없었어도, 탄핵이 없고 문재인도 없었을 거라는 가정은 허망하다. 재능과 무능은 같은 속성이 있다. 재능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고 무능은 손에 쥔 벽돌과 같다. 둘 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좀처럼 감춰지지 않는다. 최순실이 아니었어도, 세월호가 아니었어도 결국 드러날 무능이라고 봐야 한다. 이 무능을 누가, 어떻게 포장했는가.

 박근혜의 자멸 이후 박근혜를 아이콘으로 여겨온 보수 진영도 거의 완벽하게 자멸했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당의 구성원 전체와 당의 운영시스템 자체가 ‘적폐세력’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렇다 할 반격의 기운도, 반격을 주도할 중심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과거 진보 진영은 어떤 테마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할 때 ‘100인 회의’ 나 ‘원로회의“ 등을 통해 분열을 봉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보수 진영은 부패는 부패대로 그대로 둔 채, 손바닥 만한 기득권조차 내려놓지 못하고 분열하는 퇴행을 보이고 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으나 한국 사회에서 그런 전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정호성 중앙당 부대변인(오른쪽 세번째) 등 자유한국당 부대변인단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내린 당 윤리위원회 및 혁신위원회, 그리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호성 중앙당 부대변인(오른쪽 세번째) 등 자유한국당 부대변인단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내린 당 윤리위원회 및 혁신위원회, 그리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외부 세력의 공격에 정당의 존립과 지지 세력의 궤멸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한국당은 이미 과거가 돼버린 박근혜의 주변세력과 이 주변세력을 정리하려는 세력과의 정쟁에 휘말려 있다. 성 밖에 적이 몰려와 성벽이 무너지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싸움에 몰두하는 집단의 미래는 누가 봐도 뻔하다. 이해찬 의원의 진단대로 진보는 20년 장기집권의 길로, 보수는 궤멸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28일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1주년 집회. 김경록 기자

28일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1주년 집회. 김경록 기자

 보스가 사라진 친박 집단은 탄핵과 함께 그 운명이 마감되었어야 상식적이다. 친박은 무슨 말로 포장해도 박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조작한 원죄가 있다. 박근혜를 팔아 호가호위한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용납하기 어렵다. 친박의 행태는 그들의 결속이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이익공동체였음을 스스로 실토하고 있다. 친박 세력 중 어느 누구도 박근혜의 몰락에 분노해 이른바 정치적 순장을 감행하는 결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한국당 내에서 친박은 여전히 기세등등한 기득권 세력의 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이 당에 인질로 잡힌 한 줌 보수 진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전까지만 해도 소수였던 진보진영이 보수의 압력에 눌릴 때마다 탈출구로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주문은 이제 보수의 주문이 되어야 할 듯하다. 한쪽 진영의 몰락은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진보 진영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다. 목마는 트로이에서도, 한국 사회에서도 완벽하게 작동됐다. 한 때의 영화를 제 손으로 먹칠하면서 박근혜는 이미 과거가 됐고 주인 잃은 친박만 남아 미련을 붙잡고 있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국민들이 홍준표와 서청원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m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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