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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보겠다" 몰카범죄 막을 '빨간 원' 고안한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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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몰카범죄 막을 '빨간 원' 고안한 광운대 이종혁 교수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 교수가 2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빨간원 프로젝트 의의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 교수가 2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빨간원 프로젝트 의의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빨간 원 프로젝트’는 시민들에게 몰래카메라 범죄의 심각성을 환기(喚起)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둘레에 빨간색 원 스티커를 붙인 사진과 함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나는 보지 않겠습니다” “나는 감시하겠습니다”고 다짐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가 지난달 15일부터 시작한 ‘빨간 원 프로젝트’ 동참자들이다.

몰카범죄 심각성 전해 듣고 고민 #노트북 카메라에 붙은 테이프 힌트 #일반 시민이 주도하는 캠페인 의미 #적은 예산의 민관협력 모델 반응 커 #공공 캠페인의 '판 바뀌었다' 평가 #120개 프로젝트로 사람중심 사회 실험

스티커 초기 물량 6만 개는 모두 소진, 10만 개를 추가 제작해 배포할 정도로 호응이 상당하다. 일반 시민들이 몰래카메라,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전 연인과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것) 등을 그만큼 심각한 공공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빨간 원을 통해 집단 저항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지난 25일 빨간 원을 고안한 이종혁(48·사진)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를 공공소통연구소에서 만나 이번 캠페인의 의미, 넛지(Nudge·부드러운 개입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빨간 원 프로젝트 시작은.
지난 8월 초 경기남부경찰청 김경운 홍보기획계장으로부터 늘어나는 몰카범죄 현황, 피해 여성의 상태 등 심각성에 대해 전해 들은 게 계기였다. (당시 경기남부경찰은 몰카는 보지 않음으로써 근절할 수 있다는 메시지 등을 주는 캠페인을 기획 중이었다.)
빨간원 프로젝트 디자인. [자료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빨간원 프로젝트 디자인. [자료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어떻게 구체화했나.
집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막내딸(12)의 노트북 카메라 렌즈 위에 테이프가 붙어있더라. 늘 일상속에 소통의 해답이 있다. 속도제한 교통표지판처럼 경고·주의를 주는 내용은 대부분 빨간 원 안에 넣는다. 금연 표시도 마찬가지다. 워낙 일상적이다 보니 의식하지 않게 되는, 하지만 몰카 문제를 일으키는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주변에 빨간 원을 붙여봤다. 반응이 괜찮았다. 이어 경기남부경찰이 캠페인 확산에 나섰다. 
빨간원 프로젝트 연예인 1호 참여자 배우 설경구의 인증사진.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빨간원 프로젝트 연예인 1호 참여자 배우 설경구의 인증사진.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시민들의 공감이 상당하다. 영화배우 설경구와 같은 유명인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캠페인은 일반 시민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 갖게 하는 것이다. 과거 캠페인은 기업이나 유명인 중심이었다. 시민은 마치 계도의 대상 인냥 바라봤다. 반면 릴레이로 진행되는 이번 빨간 원 프로젝트는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 교수. 최정동 기자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 교수. 최정동 기자

이번 캠페인으로 몰카 범죄가 줄어들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특히 사건·사고와 관련한 캠페인은 정량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한명이라도 몰카를 촬영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누군가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이다. 몰카 피해로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진다. 단순히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져서는 안된다.  
캠페인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
환경 캠페인을 항상 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에게 ‘환경을 지켜야지’하는 의식은 남게 된다. 시민들에게 몰래 카메라 범죄의 심각성을 환기 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굉장히 크다. 창의적 소통을 하는 민간과 실천적 소통에 나선 관의 협력 캠페인 반응이 기대 이상이다. 비용도 얼마 들지 않았다. (공공 캠페인의) 판이 바뀌었다.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 교수가 행동경제학인 넛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 교수가 행동경제학인 넛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빨간 원은 넛지의 일종인데 좋은 넛지는 뭔가.
현장에서 경험한, 목격한 사람들의 비판적 사고에서 나온다.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도 중요하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좁은 골목길 안 화재진압을 돕기 위해 소화기를 비치했다. 하지만 구석에 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에 소화기 겉면에 예술작품을 입혀 소화기 갤러리 프로젝트를 지난달 진행했다. 눈에 잘 띄는 소화기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 대중교통 안 임산부 좌석 위에 테디베어를 앉힌 것, 버려진 천 조각에 친환경 실천 약속을 담아 만든 쿠션, 말풍선 안에 ‘우정 끊을래?’ 문구를 넣은 고등학교 금연캠페인 등 다양하다.
좁은 골목길 화재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바꾼 소화기 갤러리 프로젝트. [사진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좁은 골목길 화재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바꾼 소화기 갤러리 프로젝트. [사진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 교수는 최근『커뮤니케이터』라는 책을 출판사 없이 독립출판했다. 이후 서울의 한 동네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실험 중이다. 동네서점 관심갖기 프로젝트 일환이다. 일주일에 한 종류의 책을 판매하는 일본 모리오카 서점(긴자점)에서 착안했다. 그는 2012년 5월 공공소통연구소를 만든 후 생활속의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120여개의 라우드(LOUD)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람이 중심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서울·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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