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상당수 감독이 칙칙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벤치를 지켰다. 요즘은 다르다. 날렵한 수트 내지 산뜻한 캐주얼룩 차림 대세다. 그라운드를 런웨이로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패셔니스타(fashionista·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대중의 유행을 이끄는 사람)’ 감독들이 팬심과 시선을 흔든다.
팬심 사로잡는 스타 축구 감독들 #맨시티 과르디올라 카디건·진 즐겨 #축구도 ‘티키타카’ 튀는 스타일 #맨유 모리뉴는 명품정장 중후한 멋 #중원부터 장악 ‘고전적 축구’ 고집 #울산 김도훈 컬러매칭 멋진 ‘남친룩’ #신태용 감독은 ‘아시아의 뢰브’ 별명
‘패피(패션 피플)’의 대세는 잉글랜드 맨체스터시티(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46·스페인) 감독이다. 모델처럼 수트를 즐겨 입지만, 간혹 카디건에 진과 스니커즈도 착용한다. 패션 부티크 집안 출신인 부인 크리스티나가 특유의 패션 감각으로 남편의 민머리마저 멋지게 만들었다.
맨시티의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조제 모리뉴(54·포르투갈) 감독의 경우 명품 정장과 시계로 중후한 멋을 뽐낸다. 타이는 거의 하지 않고, 대신 머플러로 멋을 낸다.
남성패션지 에스콰이어 권지원 패션 에디터는 “과르디올라와 모리뉴의 경우, 입는 스타일이 언뜻 비슷하다. 수트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꼭 맞고, 바지통은 슬림하게 떨어진다. 라펠(재킷의 깃) 폭이 좁은 것을 골라 냉철한 인상도 준다. 수트는 회색·남색·검정 등 진한 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두 감독 느낌이 다른 이유, 바로 ‘아이템 차이’ 때문이다. 모리뉴는 니트·카디건에 양말까지 무채색을 고집한다. 비슷한 톤으로 맞춰 입어 보다 세련된 인상을 준다. 과르디올라는 카멜색·분홍색 등 자유분방한 색조를 쓴다.
감독의 패션 스타일은 그들의 축구 스타일과도 통한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 시절 ‘토탈사커’를 좀 더 발전시켜 아름다운 플레이를 지향했다. 혁신적이었던 패션처럼, ‘티키타카’(탁구 하듯 짧고 빠른 패스 플레이), ‘폴스9’(가짜 공격수) 등 혁명적이라 할 전술을 썼다.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8년간 21차례 우승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를 맡은 뒤, 힘과 스피드의 잉글랜드 축구에다 스페인식 패스축구, 독일식 역습축구를 접목했다. 맨시티는 이번 시즌 리그 1위(8승1무)다.
모리뉴 감독은 중원을 장악한 뒤 측면을 공략하는 ‘고전적’인 축구를 한다. 맨유는 맨시티 뒤를 이어 2위(6승2무1패)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호(73) 감독은 “예전 감독들이 주로 ‘츄리닝’을 입은 건, 비싼 옷 살 돈도 없었고, 선수들과 함께 뛴다는 의미도 있었다”며 “해외원정이 많아지면서 외국 감독들 옷차림을 보고 배웠다. 프로화가 된 것도 정장을 입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조직’의 보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디에고 시메오네(47·아르헨티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감독은 수트에 와이셔츠까지 ‘올블랙 패션’을 즐긴다.
K리그의 ‘패션왕’ 울산 현대 김도훈(47) 감독은 블루 머플러와 브라운 로퍼 내지 그레이 스니커즈를 즐긴다. 이른바 ‘남친룩’인데, 김 감독은 “내가 입기 편해야 보기에도 편하다. 날씨에 맞추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이연화 로터스그룹 대표이사는 “시메오네는 윗단추를 풀고 날렵한 타이와 라펠을 착용해 카리스마를 표현한다. 김도훈 감독은 컬러매칭 디테일로 포인트를 준다”며 “패션은 그 사람 성격을 보여주는 ‘일루전(환상·illusion)’”이라고 말했다.
시메오네 감독은 실제로 어떤 상대를 만나든 기죽는 법이 없다. 또 김도훈 감독은 패션 아이템 고르듯 선수도 전술에 따라 선수를 다양하게 쓴다.
전 세계 국가대표 사령탑 중에선 스카프 연출을 잘하는 요아힘 뢰브(57) 독일 감독이 옷 잘입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신태용(47) 한국 감독은 종종 뢰브 감독과 닮은꼴 패션을 선보여 ‘아시아의 뢰브 쌍둥이’로 불린다. 신 감독은 아르마니 정장과 셔츠, 페라가모 구두를 즐겨 착용한다.
축구와 농구·배구는 감독의 복장에 대한 규정이 없다. 반면 야구는 감독이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배구에선 김상우(44) 우리카드 감독이, 농구에선 이상민(45) 삼성 감독이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이들은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따로 몸 관리도 한다. 반면 일부 감독은 ‘패션 테러리스트’ 소리를 듣기도 한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