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 막힌 안철수의 통합 작전…“국민의당 가치와 정체성 공유되야 연대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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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5일 바른정당과의 통합 논의에서 물러났다. 호남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내 반발에 부딪히면서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왼쪽)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의원 연석회의에서 “국민의당이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중도개혁의 구심력을 형성해야 한다”며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이 공유되는 수준에서 연대의 가능성, 연대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햇볕정책 포기와 호남 지역주의 타파 등을 통합 조건으로 내걸었다. 안 대표의 이날 발언은 유 의원의 이같은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동안 박지원 전 대표 등 호남 중진 의원들은 “햇볕정책과 호남은 당의 정체성인 만큼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탈당ㆍ분당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바른정당과의 통합 논의에 반대했다.

다만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정책 연대나 선거 연대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손금주 당 수석대변인은 “정책 연대와 선거 연대와 관련된 부분은 국감이 끝난 후 의원들과 당내에서 적극적인 의견 개진 과정을 거쳐 진행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졌다”고 말했다. 안 대표도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정책연대를 추진하고 선거연대까지는 모색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안 대표 측은 지난 10일 간 바른정당과의 통합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해왔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의 통합 시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자체 여론조사를 언론에 공개한 것도 안 대표 측의 결정이었다. 안 대표의 측근인 송기석 의원은 지난 20일 라디오에서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에 약 30명 정도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그리고 선거연대까지 가능하다면 선거까지 (통합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당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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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안 대표의 통합 드라이브에 당내 의원 상당수가 반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날 회의에서도 안 대표의 통합논의 추진 방식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고 한다. “당 의원을 소통 대상이 아닌 전수조사의 대상으로 놓는 게 불쾌했다”(천정배 의원), “당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좀더 의견 수렴을 잘 해야 한다”(박준영 의원) 등이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지원 전 대표는 “현실적으로 바른정당은 11월에 깨지게 돼 있고 노적(露積)에 불질러 놓고 싸래기 몇개 주워 통합이라고 할 수 없다“며 “우리가 싫다고 나가면 (바른정당과 통합해도) 40석도 안되고 도로 30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같은 당내 반발에 대해 “지금은 공감대를 형성해 어디까지 우리가 할 것인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며 “빨리 정리가 된 것 같다”고만 말했다.

안 대표의 리더십은 또 상처를 입게 됐다. 국민의당 한 의원은 “이번 통합 국면에서 안 대표만 손해를 봤다”며 “유 의원은 ‘보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영남 지역에 확실히 강조했지만, 안 대표의 경우 호남 지역에 미운털이 박히고, 당내에서 어설프게 일 처리를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안 대표 측 관계자는 "바른정당과의 선거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당내 공감대가 넓게 형성된 만큼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고 평가했다.

당내에서는 안 대표가 향후 통합 국면을 다시 조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넘어 다음 대선까지 생각하고 있는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향후 선거연대를 추진하다 바른정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다시 통합 분위기 조성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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