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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방러 때 박경리 동상 제막식 참석하면 이상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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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호 04면

[특별기획] ‘한국학 120주년’ 푸틴의 동문, 크로파체프 상트대 총장 인터뷰

김병옥이 강의했던 러시아 상트대 동양학부 건물

김병옥이 강의했던 러시아 상트대 동양학부 건물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총장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총장

니콜라이 크로파체프(58)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이하 상트대) 총장의 집무실 책상 위엔 종이로 된 광화문광장 모형이 놓여 있다. 지난달 말 열린 ‘전략 콘퍼런스’(한러대화 주최)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산 기념품이다. 이전까지 그는 수차례 한국을 다녀갔지만 공항·호텔·행사장을 벗어나 서울 거리 곳곳을 걸어다니고 삼겹살을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2013년 서울 푸시킨 동상 제막식 #푸틴 대통령 참석하고 축사도 해 #120년간 한국학 심도 있는 교육 #관심 높아져 독립학과로 분리

한·러 교류 증진 앞장선 친한파 인사

동양학부 건물 내 한국학 강의실

동양학부 건물 내 한국학 강의실

상트대 한국학 연구자들이 러시아어로 발간한 교본과 한국 고전문학 번역서

상트대 한국학 연구자들이 러시아어로 발간한 교본과 한국 고전문학 번역서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 러시아 인사다. 2010년부터 한러대화 러시아 측 조정위원장을 맡아 양국 간 교류 증진에 매진해왔다. 상트대가 이번 학기부터 동양언어학부 동남아·한국어과에 속해 있던 한국 관련 강좌를 모아 독립학과로 만든 것도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그의 적극적 지원 덕분이라는 게 학계 안팎의 평가다. 중앙SUNDAY는 지난 13일 크로파체프 총장을 상트대 본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학 교육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본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상트대는 120년간 한국학을 가르쳐왔다.
“기간보다 중요한 것은 질이다. 아무리 오래 가르쳤어도 질이 떨어지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지난 120년간 심도 있는 연구, 질적으로 훌륭한 교육을 해왔다. 그 결과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학생 수가 계속 증가했다. 또 양국 간 연구활동과 공동 프로젝트도 최근 5년간 통계적으로 크게 늘었다. 책 발간도 활발해져 매우 기쁘다. 기존에는 한국 언어·역사 등을 개별적으로 연구했는데 이 분야들을 통합해 종합적으로 다루는 한국학이라는 개념도 확립시키는 중이다. 법학, 경영학, 이공계 학과 전공자들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연결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다.”
한국학과를 다른 과에서 분리했다.
“예전엔 다른 언어학과에 함께 속해 있었고 학과장도 타 언어 전공자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을 뽑는 것에서부터 한국학 교수들이 뭔가 주체적으로 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지원을 받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개별 학과를 개설하면서 독립된 조직이 생겨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제대로 다룰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 한국학과가 드문데 마음먹고 만든 것이다.”

3년 노력하니 박경리 인지도 높아져

상트대 한국학과 학생들

상트대 한국학과 학생들

한국학 120주년 학술대회에서 한국무용 시범을 보이는 한국학과 학생들. 박민제 기자, [사진 상트대]

한국학 120주년 학술대회에서 한국무용 시범을 보이는 한국학과 학생들. 박민제 기자, [사진 상트대]

한국학이 왜 중요한가.
“답은 간단하다. 러시아와 한국은 믿을 만한 이웃 나라이면서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다.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민족적 친근감이 큰 사이다. 더구나 한국의 언어와 문화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상트대는 한국학과가 속해 있는 동양학부 건물 앞 정원에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동상을 세울 계획이다. 권대훈 서울대 조소과 교수가 제작한 박경리 동상은 지난달 1일 상트대에 도착해 제막식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2013년에는 한러대화 주도로 러시아 국민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상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 세워졌다.

박경리 동상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동상을 세우는 데 중요한 것은 현지인들이 해당 작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여부다. 동상을 세웠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이 분을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기고 사람들의 지식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2013년만 해도 러시아인 대부분은 박경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박경리를 러시아에 알리는 일이었다. 한러대화 문화예술분과와 상트대는 공동으로 그간 박경리 관련 학술세미나를 세 차례 열었다. 또 두 나라 언어로 박경리의 생애와 창작 세계를 전면적으로 조명한 『박경리, 넓고 깊은 바다처럼』이란 총서를 출간했다. 박경리 작품만을 강의하는 특별 강좌도 개설했다. 한러대화와 토지문화재단이 공동으로 『토지』 1권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3년여간 적극적으로 노력한 끝에 박경리에 대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생겼다. 이제는 동상을 세울 때가 됐다고 본다.”
정확히 언제쯤 세워지나.
“양국 간 정상회담 시기로 맞추는 게 이상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해 함께 제막식을 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 푸시킨 동상이 서울에 세워질 때 푸틴 대통령이 제막식에 참석하고 축사도 했다. 문 대통령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할 때 모스크바에 들른 다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막식에 참석해주면 완벽한 그림이 될 것이다.”

크로파체프 총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3명 모두 상트대 법학부 출신으로 유리 키릴로비치 톨스토이 교수에게 배운 인연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1976년 졸업했고 크로파체프 총장은 81년, 메드베데프 총리는 84년 졸업했다. 같은 학번은 아니지만 같은 교수 밑에서 배운 인연으로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 사이다. 그에게 양국 관계에 대한 러시아 정부 내부 분위기를 물었다.

“지난달 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때 두 대통령이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선포하면서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앞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과 문화교류가 증진될 것이라 본다.”

문재인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한·러 관계는 정치적인 면보다 경제적 협력 위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요새 한반도 핵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로 논쟁이 벌어지고 찬반 논란이 많았는데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 정치나 무력을 사용해 얻는 효과는 별로 없다. 러시아와 일본 관계를 봐라. 예전에 두 나라는 영토 분쟁을 벌였지만 최근엔 관계가 좋아졌다. 영토 분쟁을 떠나서 양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자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사이가 좋아진다. 한국과 러시아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실질적인 경제 프로젝트를 많이 만들어 서로 윈윈하는 방식으로 양국 관계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건 통일된 한국을 위해서도 중요한 얘기다.”

한·러 경제협력 통해 윈윈해나가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달 열린 전략 콘퍼런스 때 러시아 가스프롬과 한국가스공사 대표가 만난 걸로 알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게 잘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가 박경리 선생 책을 읽듯이 문화 접촉을 늘리다 보면 한반도의 안정과 지역의 평화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스관과 철도를 연결하는 경제 프로젝트와 한러대화 유형의 민간 대화를 활성화시킨다면 양국 간 진정한 이해와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크로파체프 총장은 우윤근 주러 대사 내정자와도 친밀한 관계다. 우 내정자는 2006년 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이후 한러대화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며 크로파체프 총장과 자주 만나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눠왔다. 크로파체프 총장은 “우 내정자는 애국자이자 러시아 문화와 교육에 대한 애호가이며 개인적으로는 친구 관계다. 한·러 관계 발전을 위해 완벽한 인물이 대사로 오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러대화(KRD) 한·러 양국 간 상호 이해 증진을 통한 소통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 설치된 민간 대화 창구다. 2010년 설치 이후 민간이 주도하고 양국 정상이 참여하는 ‘KRD포럼’을 세 차례 열었다. 현재 한국 측 조정위원장은 이규형 전 주러·주중 대사가, 러시아 측 위원장은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상트대 총장이 맡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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