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로 여성들이 무릎꿇린 큰손·CEO 알고보니

중앙일보

입력 2017.10.20 14:00

업데이트 2017.10.20 15:07

[이슈추적]여성들 광장으로 나와 성추행을 무릎 꿇리다 

할리우드 큰손도, 유명 TV 앵커도, 내로라하는 벤처기업 CEO도 무릎 꿇었다.
할리우드를 쥐락펴락 하는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 추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수많은 여성이 SNS에 해시태그 ‘#MeToo(미투)’를 달아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미투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다.

공론화 중요하단 인식에 피해 여성들 큰 용기
여기에 SNS 통한 여성들의 끈끈한 연대
방관자, 묵인하는 문화 비판하는 목소리도

하비 웨인스타인. [AP=연합뉴스]

하비 웨인스타인. [AP=연합뉴스]

귀네스 펠트로, 앤젤리나 졸리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데 이어 리즈 위더스푼 등도 할리우드에서 겪었던 일을 공개했고, 스포츠스타들도 고백을 이어갔다.
사회 전반에 걸친 뿌리깊은 성 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연대, ‘미투 캠페인’은 현재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고 있는 중이다.

리즈 위더스푼 [사진=위더스푼 인스타그램 캡처]

리즈 위더스푼 [사진=위더스푼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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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성 추문으로 무너진 거물은 웨인스타인만이 아니다.
지난 4월 미디어 업계를 주름잡던 앵커 빌 오라일리는, 지위를 악용해 15년간 부하 직원과 동료 진행자 등을 집요하게 성희롱한 사실이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밝혀지며 쫓겨났다. 폭스뉴스의 간판스타로 뉴스쇼 ‘오라일리 팩터’ 등을 성공시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이였다.

빌 오라일리

빌 오라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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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로 불려온 우버의 설립자 트래비스 캘러닉은 조직 내 만연한 성추행 등을 눈감아주다 투자자들의 압박에 못 이겨 최고경영자(CEO) 직에서 내려왔다. 그 자신이 한국 출장길에 단체로 룸살롱에 가서 여종업원과 유흥을 즐긴 사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건드릴 수 없는 ‘절대 권력자’를 무릎 꿇린 힘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있었다. 이들은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일자리를 잃고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엄청난 공포를 무릅쓰고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성 범죄 피해의 경우 수치심과 보복의 두려움 등으로 이를 숨기는 이들이 많지만, 최근에는 ‘공론화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실제 실리콘밸리에서는 ‘우버 효과’ 직후 수많은 여성의 폭로가 이어지며 유명 투자자 저스틴 칼드벡 등이 줄줄이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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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변화에 더해진 것은 SNS를 통한 끈끈한 연대다. 여성들은 SNS로 피해 사실을 공유하고 가해자를 압박하며 단순히 해당 업계와 지역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는 달라진 방식이다.

할리우드 영화배우 앨리사 밀라노가 시작한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Too)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앨리사 밀라노 페이스북]

할리우드 영화배우 앨리사 밀라노가 시작한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Too)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앨리사 밀라노 페이스북]

미 인터넷매체 버즈피드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웨인스타인과 같은 이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은밀히 (남성들의) 평판을 공유하는 일뿐이었다”며 “성희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부담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 피해자가 느끼는 압박감은 너무나 크므로, 여성들은 서로 ‘저 사람을 조심해’라고 ‘소곤소곤’ 경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런 소곤소곤 문화를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성들에게 이는 ‘생존의 수단’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렇게 상황을 은밀히 공유하는 문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미 취업 사이트 래더스의 에디터 모니카 토레스는 칼럼에서 “여성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처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개된 비밀’을 공유해왔지만, 결국 이는 ‘비밀’이기 때문에 경고를 놓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었다”며 “직장 내 웨인스타인을 막기 위해선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가해자를 처벌하고 성 폭력이 용인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공론화가 중요한데, ‘소곤소곤 문화’가 SNS를 통해 비로소 광장으로 나옴으로써 이것이 가능해졌단 얘기다. 이렇게 형성된 연대가 난공불락 같았던 권력까지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USA투데이 또한 “미투 캠페인은 10년 전 한 활동가가 제안해 시작된 것이지만, 이런 폭발력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SNS를 통한 연대의 강력한 영향력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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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제 단순히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방관자와 그 문화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단 사실이다. 웨인스타인의 추문이 폭로된 이후, 미국인들은 이에 침묵해온 수많은 할리우드 남성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벤 에플릭, 콜린 퍼스 등 처음엔 취재에 응하지 않던 톱스타들이 줄줄이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된 연유다.

그간 보도가 나오지 않았던 데 대해 언론들도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후 잡지 뉴요커 등은 취재를 진행했음에도 익명을 요구하는 취재원이 너무 많아 보도를 하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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