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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왜 법정 스릴러를 만들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라희찬(STUDIO 70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라희찬(STUDIO 706)

[매거진M] ‘태풍이 지나가고’(2016) 개봉에 맞춰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55) 감독은 “가족영화를 당분간 만들지 않겠다”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고 했었다. ‘걸어도 걸어도’(2008)부터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까지 가족 연작을 완성한 그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것은 의외로 법정 스릴러였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처음 공개된 ‘세 번째 살인’(연말 개봉 예정)은 전과가 있어 사형 선고가 유력한 살인 용의자 미스미(야쿠쇼 코지)와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려는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의 팽팽한 진실 공방을 다룬다. 남자는 정말 살인을 했을까, 만약 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진실을 찾는 것은 가능할까. 19일 부산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내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에게 좋은 의미로 배신감을 느낄만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세 번째 살인' 초청 #후쿠야마 마사하루, 야쿠쇼 코지 주연 #살인자와 변호사의 치열한 진실 공방 #"관객, 기분 좋은 배신감 느낄 것"

-가족영화에서 법정 스릴러로, 꽤 큰 변화다.   
“내가 홈 드라마를 계속한 건 지난 10년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족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슬픈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단지 시야를 넓혀서 내가 일본에 살면서 절실하게 관심 가진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상황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었다.”
-왜 지금, 그 주제일까.
“꼭 외부의 어떤 사건이 있고 붐이 일어서 영화를 찍게 되는 건 아니다. 내 안의 관심사를 표출하고 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보편성을 갖게 되는 것이지. 물론 일본의 사법 제도가 특이한 상황에 놓여있기는 하다. 기소된 사건의 99.8%가 유죄가 된다. 선진국으로는 드물게 사형 제도가 존속하고 있고, 사형 집행에 대해 80% 여론이 지지한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렇기에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이어지는 건 아니다."

영화 '세 번째 살인'

영화 '세 번째 살인'

-질문을 바꿔보자. 이 영화는 변호사의 직업적 딜레마를 파고 든다.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을 때, 법률 자문을 해 준 변호사가 있었다. 영화의 실제 모델이다. 그 분과 TV를 보는데 법원 앞에서 한 리포터가 생중계를 하더라. 어떤 사건이 1심 판결이 났고 항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리포터는 매우 상투적인 멘트를 했다. ‘이로써 진실을 추구하는 자리는 지방법원에서 고등법원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러자 변호사가 ‘저 멘트는 들을 때마다 위화감이 든다’며 ‘진실을 추구하는 게 법정이 아니다. 변호사 입장에선 이해를 조정하는 곳이지' 라고 하더라. 그 때 말투가 서늘하면서도 성실하게 들렸다. 그는 ‘변호사는 진실을 추구할 의무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피고인에게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우리가 ‘도라에몽’이 아닌 이상 타임머신을 타고 살인 사건 현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일은 무엇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만약 ‘진실은 알 수 없다’고 단언하던 변호사가, 역설적으로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거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됐다.”
-‘살인자인가, 아닌가’를 놓고 야쿠쇼 코지와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벌이는 연기 공방이 치열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스릴러영화보다 '석양의 건맨'(1965,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같은 서부극을 많이 봤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마치 남자 둘이 대치하며 상대의 마음을 살피다가 누가 먼저 권총을 빼들지 겨루는 것과 같았다. 접견실 장면은 애초 시나리오엔 5회 밖에 없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둘이 밀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더라. 그래서 더 넣게 됐다. 오우삼 감독이 ‘맨헌트’를 오사카에서 찍어서 촬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감독께 ‘당신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매력적이다. 나도 남자들의 이야기를 찍을 건데 비결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매력적인 남자 옆엔 반드시 매력적인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웃음).”

영화 '세 번째 살인'

영화 '세 번째 살인'

-사물의 이면을 보려는 변호사의 분투에서, 인물의 이면을 그리고 싶은 감독의 분투도 느껴졌다.
“맞다. 나도 시게모리 등 뒤에 서서 유리벽 너머에 있는 미스미의 진의가 무엇인지, 그를 이해할 수 있나, 계속 고민했다."
-제목이 ‘세 번째 살인’이다. 30년전 살인 전과가 있는 미스미가 또 한 번 살인을 저지른 것이니 두 번째 살인일 텐데, 왜 세 번째인가. 그것은 사형을 뜻하나?
“물론 사형을 사법 살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해석을 염두한 제목이라 그 질문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겠다. 개인적으로 사형제의 존속을 지지하지 않지만, 사형에 반대하는 목적으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영화엔 여러 형태의 악(惡)의 얼굴이 나온다. 그 중 중심에 있는 건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악’이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법정에서 심판받거나 처벌받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세 번째 살인'

영화 '세 번째 살인'

-전형적인 장르 영화는 아니다. 누가 죽였는지 그 결말보다는 결말로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해 보인다.  
“정형화된 스릴러 장르의 규칙이나, 도달 지점과는 어긋나게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실인가 아닌가, 그 질문보다는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것 아닌가, 진실을 알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무서운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올 해 BIFF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위촉됐다.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께서 뜨거운 열정으로 의뢰를 해서 맡게 됐다. 지금 김 선생님이 안 계셔서 너무 안타깝지만 그 뜻을 이어받아 열심히 참여했다. 학생들이 만든 단편을 함께 보고 선배 감독으로서 조언을 해줬다, 최근작 ‘태풍이 지나가고’에 대해 강의도 했는데,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아시아의 감독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게 정말 즐거운 일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다. 20년 동안 영화를 해왔고 이제 50대가 되었다. 만약 50대, 60대, 70대가 된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있지 않으면 20대는 불안할 것이다. 물론 20대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많이 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즐거운 일임을 얘기해주고 싶다."

기자회견 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 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만남에 나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만남에 나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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