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유턴기업지원법은 곳곳이 지뢰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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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통상 연구본부 연구위원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통상 연구본부 연구위원

한·중 간 마찰과 보복으로 인해 중국 사업을 접거나 철수를 고민하는 기업들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들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이 자주 거론된다. 왜 이런 기업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유턴기업지원법(이하 유턴법)을 제정해 발효 중이다. 이처럼 기업들의 복귀를 지원하는 법은 이미 있다.

중국 철수 고민하는 기업들이 #국내 복귀할 생각하지 않는 건 #유턴지원법의 비현실성 때문 #기업환경·정책 예측가능해야

또 2010년대 이후 해외 유명 기업의 자국 복귀 성공사례가 보도되면서 나라마다 국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해외 진출 기업을 다시 국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고 있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로 현지의 저렴한 임금을 목적으로 나간 기업의 경우 국내 복귀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기업을 국내로 복귀시킨다고 해도 내국인을 채용하는 대신 국내에 체류 중인 저임금 외국인 인력의 수입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새 정부 들어 인건비 상승을 유발하는 정책이 잇따르고, 각국이 법인세를 내리는 가운데 나 홀로 법인세 인상에 나서고 있다.

둘째로 최근의 해외 투자는 현지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내수 시장의 규모는 주변국보다 투자처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거대 시장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해 이들 거대 시장에 국내 시장처럼 접근할 기회를 확보했다. 이 점은 기업을 불러들이는 데 어느 정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현지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해외 진출은 국내 생산 및 수출로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FTA를 맺은 나라에도 우리 기업들이 꾸준히 진출하고 있다. FTA 효과가 우리 기업의 국내 귀환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미 FTA 재협상, 중국과의 마찰 등 이슈로 우리가 확보한 시장 기반이 흔들리는 것도 기업의 국내 복귀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다.

시론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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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상당수 중소기업은 현지 대기업과의 협력 관계 때문에 동반 진출해 있다. 이들의 협력 관계가 유지되고 해당 대기업이 현지에서의 경영을 계속하는 협력업체가 국내로 복귀하기 어렵다.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하면 해외 진출 국내 기업의 복귀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 창출의 중심인 ‘앵커 기업’으로서 대기업의 국내 복귀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핵심 역할을 할 기업들의 국내 복귀는 각종 제도적·환경적 장애요인으로 인해 요원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선할 여지는 있을까. 있다.

먼저 복귀 기업의 지정 범위에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현재 법률상으로 해외 진출 기업이 복귀 기업으로서 지원을 받으려면 해외 설비의 완전 청산이나 부분 축소 후 국내에 생산시설의 신설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한정하면 생산 확장 투자를 국내로 끌어들이기 힘들어져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법률에서 일괄적으로 복귀 기업 여부를 결정하지 말고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또 법률에서 명시한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귀 기업의 지원도 그 분야에 따라 담당 기관에 개별적으로 신청해야 하며 복귀 기업 지정과 별도로 또다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지원에 조세특례제한법 등이 적용돼 대기업 규제나 수도권 입지 규제 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는 필연적으로 기업의 선택 범위를 축소시키고, 현지 사업 청산 시점과 국내 사업 재개 시점 간의 시차를 유발해 어려움을 초래한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임금 수준이 높아져 기업을 유치하기 힘들어진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업이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사업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이 정치 등 외적 요인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넘어서 기업들의 국내 투자 촉진과 외국 기업의 투자 확충과도 연결되는 투자정책의 기본 방향이기도 하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통상 연구본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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