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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근혜는 ‘재판 불복’ 대신 법정에서 결백 입증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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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법정에 나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온 나라를 혼돈과 갈등에 빠뜨린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단죄가 정치 보복이고, 그에 대한 재판은 무늬만 법치주의이며, 자신은 그 희생양이라는 게 그의 인식인 듯하다. 그는 ‘고통’ ‘참담’ ‘비통’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써 가며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며 사실상 ‘재판부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으로서 부정한 청탁을 받은 적도, 권한을 남용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무죄와 억울함을 확신한다는 얘기는 돌았지만 그 확고함과 피해의식이 이처럼 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죄가 없는데도 “오해와 허구와 거짓말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올 초 탄핵 이전의 인식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정치 보복’ 내세워 희생양 부각 #지지 세력 결집 의도라면 곤란 #진실 위해 끝까지 법정서 싸워야

박 전 대통령의 작심 발언에는 6개월 추가 구속이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그는 “재구속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변호인단도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했다”며 집단 사임했다. 실제로 재판부의 구속 연장 결정에는 논란이 있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했지만 무죄추정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점은 비판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특히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 연장을 결정하기 직전에 세월호 보고시간 조작 문건을 들고 나와 생중계 브리핑한 것은 ‘재판 개입 의도’라는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물며 전직 대통령은 선과 금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해서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며 변론 포기와 다름없는 협박성 선언은 적절치 않다. 사법절차를 방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혹여 지지세력을 규합해 우호적 여론을 형성, 사법부를 압박하겠다거나 피해자 코스프레를 내세워 정치재판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면 크게 우려할 일이다.

‘박근혜 재판’은 역사적 재판이라고 불린다. 국정 농단의 실체와 그를 향한 어마어마한 혐의들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대로 ‘정치보복’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다툼의 소지가 있는 혐의에 대해 치열하고 정당하게 주장함으로써 법률과 증거에 따른 역사적인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고 했다. 법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공과(功過)를 따지는 책임 있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유무죄를 떠나 그의 목소리와 주장은 역사로 기록되고, 후세는 공평하게 평가할 것이다. 재판은 실체에 관해 객관적 진실을 발견해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재판의 저울이 공정했는지는 역사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