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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쌀겨·새끼우렁이가 잡초 없앤 비옥한 논에서 벼 재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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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인터뷰 유기농 명인 현영수씨

마늘·초피·은행잎 발효액 #벼멸구 같은 병해충 막아 #친환경 인증 쌀에 관심을

‘이곳’에선 화학 제초제나 농약이 필요 없다. 쌀겨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치운다. 병해충을 막기 위해 식물 추출액이 사용된다. 이곳은 전남 순천시 별량면 구룡2길에 위치한 농부 현영수(60·사진)씨의 논(7ha)이다. 현씨는 그간 친환경 농업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고 전남도 유기농 명인에 선정됐다. 그에게서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를 들었다.

유기농 명인 현영수씨

유기농 명인 현영수씨

친환경 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농부 입장에선 화학 제초제나 화학 농약을 쓰면 농사짓기가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토양이 산성화되고 농작물에 화학성분이 스며들 수 있다. 20여 년 전 일본으로 해외연수를 떠났었다. 당시 일본 농가들이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비자는 웰빙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니 화학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그때부터 화학농약을 쓰지 않으면서 잡초와 병해충을 물리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 적용해 왔다. 1997년 순천 별량농협 친환경 쌀 작목반 대표를 맡았다. 지금은 전남 농가에 친환경 농법을 교육하는 데 힘쓰고 있다. 앞으로도 순전히 토양의 힘으로 식물을 자라게 하고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자재로 벼를 키우는 방식을 고집할 것이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잡초를 어떻게 막나.
“벼농사에 처음 적용된 유기농법은 ‘오리농법’이다. 오리가 논에 댄 물을 헤엄치며 잡초를 뜯어먹는 방식이다. 그런데 논 인근의 족제비가 밤에 오리를 잡아먹으러 공습하면서 오리가 도망치고 논을 헤집어놓는 단점이 제기돼 왔다. 일본에서 배운 노하우는 ‘쌀겨농법’이다. 쌀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쌀겨를 가루 내어 논에 뿌려주면 잡초가 자라지 않고 토양이 비옥해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잡초 제거율이 60% 선에 불과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전남도농업기술원과 함께 연구한 끝에 쌀겨농법에 ‘우렁이농법’을 접목했다. 제초 효과는 95% 이상이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우렁이가 약 5㎝ 깊이의 물속을 헤엄치며 잡초를 왕성하게 먹어치운다. 그런데 왕우렁이 일부가 모까지 갉아먹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몸집이 작은 새끼 우렁이를 풀었더니 모를 해치지 않으면서 잡초만 갉아먹었다. 새끼 우렁이를 사용하면 왕우렁이보다 잡초 방제에 들어가는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다. 최근엔 쌀겨와 새끼 우렁이를 접목한 유기농법이 대세다.”
농약 없이 병해충은 어떻게 물리치나.
“벼멸구 같은 병해충도 사람처럼 톡 쏘고 쓴맛 나는 ‘음식’을 꺼리는 원리를 적용한다. 유기농법 초창기엔 청양고추·마늘·양파 등 매운 식품의 추출액을 사용해 병해충을 막았다. 최근엔 마늘·초피·은행잎 등을 망에 넣고 발효해 만든 추출액을 사용한다. ‘이눌린’이란 성분 때문에 맛이 매우 쓴 고들빼기도 병해충이 싫어하는 재료다. 이 같은 방식으로 만든 유기농 쌀은 농협을 통해 순천시 내 학교 급식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친환경 농법(유기농·무농약)을 고집하는 농부들은 일일이 허리 숙여 잡초를 뜯어가며 힘들게 농사를 짓는다. 쌀겨와 새끼 우렁이 농법을 접목해도 그렇다. 하지만 애써 유기농·무농약으로 고생해 작물을 재배한 수고가 농가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반 재배 농법으로 전향한 농가도 있다. 소비자가 친환경 인증마크가 있는 농산품에 더욱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농민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는 길이다.”
벼 재배

벼 재배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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