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시청자 사로잡은 ‘굿닥터’…북미서도 입증된 K포맷의 힘

중앙일보

입력

한국 드라마 '굿닥터'를 리메이크한 미국판 '더 굿닥터'. 프레디 하이모어가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외과의사 숀 머피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 입체적 상상이 가능하다. [사진 ABC]

한국 드라마 '굿닥터'를 리메이크한 미국판 '더 굿닥터'. 프레디 하이모어가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외과의사 숀 머피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 입체적 상상이 가능하다. [사진 ABC]

미국판 ‘굿닥터’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K포맷(원안)의 힘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ABC에서 방송을 시작한 ‘더 굿닥터(The Good Doctor)’는 1회 시청률 2.2%, 2회 2.4%로 상승세를 보이면서 풀 시즌(18회) 제작이 확정됐다. 당초 13회에서 시작해 5회를 추가하면서 시즌제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한국에서도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AXN을 통해 동시 방영 중이다.

ABC '더 굿닥터' 첫방 2.2%로 시작 상승세 #풀 시즌 제작 확정돼 다음 시즌 기대감 높여 #'홈랜드'로 포맷 강국된 제2의 이스라엘 될까 #'꽃보다 할배' '히든 싱어'도 유럽서 인기

국내에서는 미국 지상파TV의 프라임타임에 처음 편성된 우리 드라마로 주목받았지만, 미국에서는 ABC 월요드라마 역대 첫 방 최고 시청률로 화제를 모았다. 1996년 ‘데인저러스 마인드’ 이후 21년 만의 기록 경신이다. 디지털 영상저장장치(DVR) 등으로 시청한 사람 또한 790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 방송 후 일주일간 누적 시청률(C7)은 4.4%에 달한다. 이는 본방송에 상영된 광고까지 그대로 붙어있는 버전을 시청한 경우로 광고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 중 하나다.

숀 머피는 "환자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로봇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ABC]

숀 머피는 "환자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로봇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ABC]

사실 미국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외과 의사의 성장담은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특성상 액션이나 재난물이스펙터클한 장면들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실제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 평점에서도 비평가 지지도는 37%, 대중 지지도는 89%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일부 언론은 “지나치게 감상적”(USA 투데이)이라거나 “너무 멜로드라마스럽다”(EW)라고 비판했지만, 대중은 보기 드물게 착하고 단순하지만 핵심을 간파하는 숀 머피(프레디 하이모어 분)에게 주목했다. ‘하우스’를 집필한 데이비드 쇼어가 작가로 참여한 것도 주효했다.

2013년 KBS2 방영 후 리메이크를 추진해온 KBS 아메리카 유건식 대표는 “원작의 틀을 유지한 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시즌제 제작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 콘텐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이스라엘 원작으로 쇼타임에서 방영된 ‘홈랜드(Homeland)’가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휩쓸고 내년 시즌7까지 제작을 확정지으면서 이스라엘 전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처럼 ‘더 굿닥터’ 역시 이러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단 얘기다. 공동제작사로 참여한 3AD는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엔터미디어콘텐츠는 ‘별에서 온 그대’ 리메이크를 추진 중이다. 3AD는 ‘로스트’ ‘하와이 파이브 오’ 등 미국 드라마의 인기 스타인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이 설립한 제작사다.

지난 7월 미국 ABC에서 방영된 '썸웨어 비트윈'. 비록 다음 시즌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한국 드라마 '신의 선물'을 원작으로 만들어 큰 관심을 모았다. [사진 ABC]

지난 7월 미국 ABC에서 방영된 '썸웨어 비트윈'. 비록 다음 시즌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한국 드라마 '신의 선물'을 원작으로 만들어 큰 관심을 모았다. [사진 ABC]

SBS ‘신의 선물’ 원작으로 지난 7월 ABC에서 먼저 10부작으로 방영된 ‘썸웨어 비트윈(Somewhere Between)’은 시청률이 0.5%대에 그쳐 시즌제 제작이 불발됐다. 한 방송 관계자는 “‘신의 선물’의 경우 14일 동안 일을 그린 드라마로 이야기 구조 자체가 너무 닫혀 있어서 시즌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며 “앞으로는 처음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 이야기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미국 및 유럽으로 K포맷 시장을 다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집중됐던 포맷 수출은 2015년을 기점으로 북미와 유럽 등으로 확대됐다. tvN ‘노란복수초’를 리메이크한 우크라이나 버전은 이스라엘 등 10개국에 판매됐고, 터키에서는 KBS2 ‘가을동화’(2000)부터 MBC ‘그녀는 예뻤다’(2015) 같은 최신작까지 리메이크 작품이 쏟아졌다.

지난해 미국 'NBC'에서 방영되며 시즌2를 확정지은 '더 늦기 전에'. '꽃보다 할배'가 원작이다. [사진 NBC]

지난해 미국 'NBC'에서 방영되며 시즌2를 확정지은 '더 늦기 전에'. '꽃보다 할배'가 원작이다. [사진 NBC]

여기에 지난해 미국 NBC에서 방영한 ‘더 늦기 전에(Better Later Than Never)’를 필두로 tvN ‘꽃보다 할배’도 이탈리아 터키 등에서 리메이크됐다. NBC의 ‘더 늦기 전에’는 시즌2 제작에 들어갔다. SBS ‘판타스틱 듀오’, JTBC ‘히든싱어’도 각각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리메이크됐다. 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Mnet‘너의 목소리가 보여’도 지난해 불가리아에서 방영되면서 유럽 진출의 물꼬를 텄다.

CJ E&M 황진우 글로벌콘텐츠개발팀장은 “‘아메리칸 아이돌’ 등 기존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포맷이 10년이 넘어가면서 새 포맷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서구 포맷들이 성공하지 못한 중국 시장에서 한국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쌓인 신뢰도가 더해져 실제 리메이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얻은 '히든 싱어'. JTBC '히든 싱어' 포맷과 동일하다. [사진 Canale Nove]

이탈리아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얻은 '히든 싱어'. JTBC '히든 싱어' 포맷과 동일하다. [사진 Canale Nove]

하지만 포맷 판매가 곧 수익 증대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 제작비의 10~15%를 라이선스 비용으로 지불하는 만큼 회차를 거듭하고 시즌이 추가될 때야 수익이 쌓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것보다 당장 비용은 적지만 장기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드라마ㆍ예능 포맷 수출액은 2013년 342만 달러(약 39억원)에서 2015년 3915만 달러(약 441억원)로 급증했다. 지난해 추산액은 5000만 달러(약 564억원)에 달한다. 전체 방송영상산업 콘텐트 수출액 중 비중도 2년 만에 1.1%에서 12.1%로 급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산업팀 손태영 매니저는 “한한령 이후 중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북미 시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최근에는 단순히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공동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CJ E&M은 영국 ITV 스튜디오와 ‘더 라인업(The Line-UP)’을, MBC는 제작사 SM C&C 및 NBC 유니버설과 함께 ‘더 게임 위드 노 네임(The Game with No Name)’을 만드는 식이다.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아시아 최대 포맷사인 엔데몰샤인이 국내 방송사인 JTBC와 함께 ‘이론상 완벽한 남자’를 공동제작해 지난 2일 파일럿으로 선보이는 등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SBS 글로벌제작사업팀 김인순 매니저는 “콘텐트의 지적재산권(IP) 개념이 점점 더 강화되면서 기획단계부터 공동개발하고 공동소유를 통해 확장해 나가는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