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度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3호 04면

[editor’s letter]

길었던 추석 연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조용하게 보냈습니다. 파업 등의 이유로 예년에 비해 요란하지 않았던 TV도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 마음을 잡아끈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4일 밤 방송된 KBS-1TV ‘힐링다큐나무야 나무야’ 2화 ‘300년의 유산–부산 아홉산 대숲’ 편입니다.

남평 문씨 가문은 1600년대부터 지금까지 부산 기장군에 있는 아홉산을 가꿔왔습니다. 52만 ㎡(약 15만 7000평)에 달하는 드넓은 산지에는 금강송·참나무·편백나무 등 400종이 넘는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영화 촬영장으로도 이미 명성이 높다네요.

특히 대나무 숲이 독특했습니다.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로 촘촘하게 군락을 이룬 두툼한 굵기의 맹종죽 숲도 놀라웠거니와 거북이 등껍질 같은 생긴 구갑죽의 울퉁불퉁한 모양도 신기했죠.

하지만 9대째 숲을 지키고 있다는 종손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직경이 20cm가 넘는 잘 생긴 대나무 위에 새겨진 못된 낙서들 때문입니다. “낙서가 새겨진 대나무는 아무리 아깝더라도 베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다른 나무에도 따라 하거든요.”

저도 덩달아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 정성껏 가꾼 나무에 그런 짓을 하는 걸까요.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 수준이 아직 그거밖에 되지 않는 거라고 말씀하신다면 뭐 굳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