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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조사 '터널 비전' 경계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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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30면

Outlook

최근 공론조사의 적실성과 효용성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공론조사를 통해 이의 중단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공공정책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가치와 효용성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토론의 장이 열렸다.

원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과정 될 우려 #결론 어떤식으로 나더라도 #반대 의견도 존중하는 태도를

또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과 같은 탈원전정책을 놓고 시민사회의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면서 그동안 일부 전문가 집단과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독점한 데서 벗어나 이제는 일반 시민도 전문성이 요청되는 공공정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자산이 우리 사회에서도 축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공론조사의 이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중단 여부를 좌우하는 이번 공론조사의 경우 그 적절성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공론화의 학습비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우선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이란 사안은 공론을 모으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민감하다. 자칫 공론화 과정을 통해 참여자의 입장 차이만 선명하게 부각되고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번 공론조사 자체가 이미 결론이 난 정책방향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원래 공론조사는 공정성·객관성·미래지향성·관용성을 갖춘 사회적 절차를 제대로 구현해 나갈 수 있어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원전 건설의 비용과 효과에 관한 지식과 조사자료를 둘러싸고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공론조사의 적절성이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논거도 있다.

첫째, 공론조사는 선거 등에서 오염되지 않는 쟁점을 대상으로 해야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명확히 탈원전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에서 공론조사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강력한 정치논리와 힘이 공론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공론조사는 이념적으로 편향성이 옅은 이슈에서 그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은 이미 원전에 대한 찬반 입장이 명확히 형성(dual climate of opinion)돼 있어 공론조사를 통해 얼마나 입장이 변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론화 과정에서 기존의 찬반 입장에 매몰되지 않고 제3의 다양한 중간지대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으나, 진영논리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원전 건설 중단 여부와 같은 사안의 경우 이해관계나 정파성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유리한 정보와 지식만을 편취하면서 주변의 다양한 입장을 전혀 보지 못하는 터널 비전(Tunnel Vision)에 갇힌 공론화 과정이 될 우려가 있다. 공론조사 이전에 이미 어떤 사안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의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면 공론이 형성될 공간이 없다.

셋째, 공론조사 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판단의 오류를 피하기 어렵다. 한 예로 기존에 건설 중인 원전을 중단할 경우 매몰비용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때 원전 중단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나 정보가 무시되는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국가 중대 사안과 결부된 공론조사는 그 의미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의 경우 공론조사와 같은 조사도구나 시민참여 절차에만 의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공론조사도 여전히 다수의 여론에 따른다는 원칙에 충실할 뿐, 다수의견이 절대적으로 옳고 소수의견이 절대적으로 틀린 것임을 증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과 같이 그 기술의 복잡성이 크고 다양한 파급효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정책의 경우 우리가 가진 정보와 지식의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어떤 일방적 결론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늘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배려하고 수용하는 노력이 공론조사의 공론보다 더 높은 가치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론조사 과정에서 원전건설 찬반 입장만 부각되고, 어느 한쪽 입장에만 동조하려는 쏠림과 양쪽 입장의 편향성이 더욱 크게 작동할 경우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토양이 사라지고 극단적 입장만 판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이번 원전 건설 중단 여부가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나더라도 채택되지 못한 의견을 존중하고 소수 의견의 장점을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추후 이번 공론조사 결정과 다른 사실이 나타나거나 오류가 있을 경우 이를 보완하려는 사회적 학습이 일어날 때 우리는 공론조사의 진정한 취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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