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 충격기’ ‘주사기’ ‘태양광 패널’ ‘생존배낭’까지.
의원들 질의 돋보이려 직접 준비 #EMP 공격 위력과 외교 불안 지적 #태양광패널·난임주사까지 동원 #일각 “너무 보여주기식 돼선 곤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이색소품들이 등장했다. 5~7분간의 짧은 질의 시간 동안 이뤄지는 질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각 의원실은 20만원 상당의 생존배낭을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보고 EMP(전자기파) 충격기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소품 준비를 해온 쪽은 주로 야당 의원이 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한 국감 때 EMP 충격기를 준비했다. EMP는 핵무기 폭발 때 발생하는 강력한 전자기파로 지상의 전자기기 내부 회로를 태우기 때문에 현대 문명을 마비시킬 수 있는 공격 방법으로 여겨진다. 의원실 관계자가 인터넷에 유포된 제조법을 참고로 해 전기파리채 등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소품으로 직접 제작했다. 간단한 제조법으로 만들었지만 성능은 확실했다. 송 의원이 손바닥 크기의 EMP 충격기를 스마트폰에 대고 작동시키자 10초 뒤 스마트폰이 먹통이 됐다. 송 의원실 관계자는 “출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제일 낮은 출력으로 시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외교부 국감 때는 생존가방이 화제가 됐다. 윤영석 한국당 의원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외교·안보 불안을 지적하기 위해 준비한 소품이다. 윤 의원이 이날 국감장에서 들고 나온 생존 배낭은 인터넷에서 25만4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배낭 안에는 방독면과 휴대용 개인 정수기, 랜턴과 부싯돌, 담요와 비상식량, 구급함이 들어 있다. 19만2000원짜리 배낭은 품절돼 구매할 수 없다고 한다.
최연혜 한국당 의원은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감장에 폐태양광 패널과 세척제를 들고 나왔다. 폐태양광 패널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중금속과 세척제의 유해성 우려 등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최 의원은 직접 세척제를 태양광 패널에 뿌리는 모습을 시연하기도 했다. 폐태양광 패널은 피감기관인 에너지공단의 협조를 받아 구했다고 한다. 최 의원실 관계자는 “세척제를 구하려고 했지만, 기업에만 판매해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당 정용기 의원은 12일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난임주사기’를 준비해 왔다. 정 의원은 “난임 여성이 맞은 주사기”라며 “이 여성이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부동산 대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유산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8·2 부동산 대책 피해자 중 한 명이 편지와 함께 보내온 것”이라며 “4장 분량의 자필 편지에는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부동산 대책으로 중도금 대출이 막혀 어려움을 겪으며 스트레스로 유산하게 됐다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13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감사장에는 에르메스·샤넬 등 명품 브랜드의 짝퉁 가방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짝퉁 상품 실태를 지적하기 위해 들고 나왔다. 이 의원 측에서 직접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팔리는 위조상품을 찾아 구입했다고 한다. 1500만~3000만원(정품 기준)에 팔리는 에르메스 버킨백은 145만원에, 350만원짜리 샤넬 그랜드샤핑은 35만원에 구매했다고 한다. 국회 한 관계자는 “다양한 소품을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보여주기식 국감이 돼선 곤란하다”며 “흥미보다 내실을 기하는 국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