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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글판’ 내걸기 붐 ...“이왕하는 것 감동적인 문구로”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는 2013년부터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에 공모를 통해 선정한 글귀를 내걸고 있다.[사진 서울시]

서울시는 2013년부터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에 공모를 통해 선정한 글귀를 내걸고 있다.[사진 서울시]

대형 철판에 담기는 30자 안쪽의 문구 #서울시는 2013년부터 ‘꿈새김판’ 운영 #양천구·동대문구·성동구도 청사에 걸어 #취지 좋지만 문구 ‘훈계적’이란 의견도

서울 동대문구청에 걸린 '희망글판'에는 마더 테레사의 시 '그래도'에서 따온 구절이 걸려 있다.[사진 동대문구청]

서울 동대문구청에 걸린 '희망글판'에는 마더 테레사의 시 '그래도'에서 따온 구절이 걸려 있다.[사진 동대문구청]

서울 성동구청은 2004년부터 창작글이나 문학 작품에서 발췌한 글을 글판에 선보이고 있다.[사진 성동구청]

서울 성동구청은 2004년부터 창작글이나 문학 작품에서 발췌한 글을 글판에 선보이고 있다.[사진 성동구청]

서울 양천구청은 구민과 직원들에게서 공모를 해 문구를 정한다. [사진 양천구청]

서울 양천구청은 구민과 직원들에게서 공모를 해 문구를 정한다. [사진 양천구청]

서울시청과 일부 서울 구청의 외벽에는 짤막한 글귀가 적힌 ‘글판’들이 걸려 있다. 글자 수는 통상 30자 안쪽이다. 보통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문구로 단장된다. 대형 철판 위를 천으로 덮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글판에는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메시지를 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울시가 2013년 가을에 '꿈새김판'에 선보인 글귀.[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2013년 가을에 '꿈새김판'에 선보인 글귀.[사진 서울시]

지방자치단체들은 각기 다른 글판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문구 선정 방식도 다양하다.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 정면 외벽을 채운 글판의 이름은 ‘꿈새김판’(가로 18.9m, 세로 8.6m)이다. ‘저물어가는 게 아니라 여물어 가는 겁니다’. 가을을 맞아 최근 옷을 갈아입은 ‘꿈새김판’에는 12일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이영배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 소통지원팀장은 “가을은 한해가 끝나는 계절이 아니라, 결실의 계절이란 의미다”고 설명했다.

2013년에 등장한 서울시의 ‘꿈새김판’은 시민 공모로 문구를 정한다. 시인·교수 등 7명이 참여한 문안선정위원회가 심사해 당선작 1편(50만원), 가작 5편(각 10만원)을 고른다. 이 팀장은 “문구가 계절과 맞는지, 얼마나 긍정적인지에 주안점을 맞춰 심사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올해 여름 '꿈새김판'에 올린 글귀.[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올해 여름 '꿈새김판'에 올린 글귀.[사진 서울시]

서울 양천구청은 2015년부터 ‘공감글판’을 청사 외벽에 걸고 있다. 양천구청 직원과 양천구민을 대상으로 글귀를 공모한다. 이번 공모전에선 구민이 낸 ‘세상은 가을에 물들고, 나는 너에게 물들고, 그러면 당신은 무엇에 물들었나요’가 뽑혔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직원들은 틈틈이 노트에 창작 시를 쓰고, 문학 작품에서 발견한 좋은 글귀를 메모하면서 공모전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동구는 2004년부터 ‘희망글판’에 성동구청 구정기획단이 창작하거나 문학 작품에서 발췌한 글을 선보이고 있다. 이달에는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라는 이해인 시인의 싯구를 내걸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희망글판’에는 마더 테레사의 시 ‘그래도’에서 발췌한 ‘그래도 사랑하라’가 내걸려 있다. 동대문구청 측은 “상처받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둬도 좋을만한 문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내건 글판은 도시 미관을 바꾸는 좋은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다’ ‘~하라’ 식의 ‘훈계적’인 문구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도서관의 글판에 적힌 ‘저물어 가는게 아니라 여물어 가는 겁니다’ ‘잊지마세요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입니다’(서울도서관, 2013년 여름), ‘꽃피워라 희망하라 그리고 사랑하라’(동대문구청 2016년 봄)가 대표적이다. ‘고마워요 해님 늦게까지 기다려줘서’(서울도서관, 올 여름), ‘그래 이렇게 함께 걸으면’(성동구청, 올 봄)처럼 의미가 모호한 문구도 있다.

김종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경희대 교수)는 “공모를 한 뒤 관의 시각에서 뽑다 보니 다양성이 떨어지고, 내용이 교훈적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 걸려 있는 '광화문글판'.[ 사진 교보생명 ]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 걸려 있는 '광화문글판'.[ 사진 교보생명 ]

교보생명이 2011년 여름에 내건 글귀.[사진 교보생명]

교보생명이 2011년 여름에 내건 글귀.[사진 교보생명]

교보생명의 2012년 봄 '광화문글판'. [사진 교보생명]

교보생명의 2012년 봄 '광화문글판'. [사진 교보생명]

1991년 교보생명이 서울 광화문 사옥에 처음 선 보인 ‘광화문글판’은 훈시적이지 않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신경림의 ‘별’). 교보생명 광화문 사옥에 12일 걸려 있는 문구다. 교보생명은 시인·소설가·카피라이터 등으로 구성된 문안선정위원회가 국내외 작품들을 두루 살펴 글귀를 고르도록 한다. 김 협회장은 “공모 제도는 취지는 좋지만 전문가들이 고민해 찾은 것만한 문구를 얻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자체들이 글귀 선택에 조금 더 공을 들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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