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한계 드러난 장기이식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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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기이식은 죽음만을 기다리는 난치병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1950년 미국에서 신장이식이 성공한 후 국내에서도 69년 신장이식을 시작으로 간.췌장.심장.폐 등 이식이 늘어났다.

이는 여러 의학적 지식과 경험, 약제의 개발과 더불어 뇌사자(심장은 뛰나 뇌는 죽어 실질적인 사망자) 의 장기기증에 힘입은 바 크다. 미국.유럽에서는 신장 이식은 70% 이상, 기타 간.췌장.심장 이식 등은 거의 전부 뇌사자의 기증에 의존하고 있다.

생체(산 사람의 신체) 장기기증에 따른 문제해결을 위해 99년 장기이식법이 제정됐고, 2000년 국립 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이 발족했다. 이로써 금전거래 등 윤리적 문제는 해결됐지만 뇌사자 기증은 현격히 줄어 99년 1백62명이던 기증자는 2002년 36명에 불과하다.

이는 생체 이식과 뇌사자 이식을 나란히 본 때문이다. 기증자의 순수성 여부를 뇌사자의 경우에까지 적용해서는 결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뇌사자 장기이식이 성공하려면 뇌사 상태를 뇌 전문의사가 판정한 후 뇌사자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 이식장기가 최적 상태로 확보되게끔 해야 한다.

뇌사를 결정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결코 쉽지 않으며 뇌사자의 상태 또한 매우 불안정하다. 뇌사자 가족이 겪는 고통도 크다. 갑작스러운 비탄 상황에서 장기기증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 내려면 전문가의 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뇌사자 장기이식의 제도.운영실태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이해한 것이라기보다 일부 생체 기증자들이 돈으로 장기를 파는 비윤리적인 문제와 뇌사판정 의료인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불필요한 위원회나 절차들로 뇌사자 장기이식의 긴박성과 특수성은 철저히 무시됐다.

최근 장기이식법을 일부 개정해 뇌사자를 관리하는 병원에 신장 한개를 사용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기로 했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KONOS의 업무를 뇌사 공여자.수여자 선정, 장기이식 성적 분석 및 대처방안 제시, 일반홍보 등으로 바꿔야 한다. 생체 이식시 기증자의 순수성 평가에 적극 개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다른 협력기구로서 민간기구인 장기분배기구(OPD)를 설립해야 한다. OPD는 뇌사자 발생 보고, 뇌사자 관리.검사 의뢰, 뇌사자 가족 관리, 이식장기 적출팀과 긴밀히 연락해 장기적출의 최적 조건 확보, 수술 후 상황 파악, 수술 후 뇌사자 가족 관리, 홍보, 장기이식 관련 의료인 교육, 이식 관련 제 비용의 정산 등을 관장해야 한다.

현재 인원과 경험이 부족한 각 병원의 이식센터가 이를 떠맡고 있어 장기이식 활성화가 구호에 그친다. 미국 OPD는 뇌사자 장기이식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일부로 운영되며 장기기증 활성화와 연관지어 OPD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어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도 서울 등에서 시범적으로 이를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

각 이식센터의 전체 환자 가운데 기증자.수여자를 선정하는 일도 KONOS에 맡겨야 한다. 이는 종래의 인센티브를 보완하는 제도다. 각 병원 간 격차가 심해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장기이식은 환자를 위한 치료이지 이식센터의 형평성 추구가 목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이 제도는 비용 추가 등 다른 어려움도 없다.

어떤 방법이든 현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장기이식 수혜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료비, 위험을 무릅쓴 외국 원정이식 행렬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외과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