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나흘 방북·김일성과 북핵 담판 … 국제 분쟁 현장 누비며 해결사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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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93)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직(1977 ~81년) 당시보다 퇴임 이후의 행적이 더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꼽힌다. 퇴임 후 카터재단을 설립한 뒤 북핵 문제를 비롯한 국제분쟁의 ‘해결사’ ‘메신저’로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93~94년 불거진 북핵 위기 때였다.

네 번째 방북 추진하는 93세 카터 #2010년 북한 찾아 억류 미국인 석방

당시 핵 개발 의혹으로 국제적 압력을 받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초강수로 맞서면서 빌 클린턴 행정부는 평북 영변 핵시설을 정밀타격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94년 6월 15일 방북길에 올라 나흘간 북한에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담판에 나섰다. 대외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의 특사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의 방문이었지만 실제로는 클린턴 대통령의 공식 승인을 받았고, 미국 외교관 2명을 대동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자서전에 “6월 1일 카터 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혔다. 나는 앨 고어 부통령 및 국가안보팀과 협의 후 시도해 볼 만하다고 결정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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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일성은 카터 전 대통령에게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신형 경수로 건설을 도와주면 NPT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 이틀째인 6월 16일 아침 전화로 백악관에 김일성의 제안을 전달했다. 이는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을 통한 제네바 합의의 뼈대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에도 방북했다. 당시 억류됐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고메즈를 데리고 왔다. 이듬해 4월엔 세계 원로 정치지도자들의 모임인 ‘디 엘더스’ 회원 3명과 함께 방북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는 등 세 차례 방북한 경험이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99년 펴낸 저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 “인생이란 점점 확대되는 것이지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고 적었다. 실제로 그는 퇴임 후 ‘마틴 루서 킹 상’을 비롯한 각종 인권상을 받았고 2002년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15년 8월엔 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고 넉 달 뒤 완치됐다고 밝혔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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