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얄팍한 보수통합론으론 문재인 정권 상대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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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정치는 역대 진보 정권 사상 최강의 세력을 확보한 문재인 대통령과 역대 가장 지리멸렬하고 리더십 취약한 분열적 야당이 병존하는 시대를 만났다. 정권이 왼쪽으로만 편향 운전을 한다 해도 야당이 단단하면 과격한 급회전과 파괴적 자충수만은 막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수혁신의 한때 희망이었던 바른정당이 얄팍한 보수통합론에 솔깃해 자유한국당을 기웃거리는 행태는 개탄스럽다. 야당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의 보수통합론자들은 “바른정당의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어렵게 만든 당을 스스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바른정당은 국회교섭단체 성립 기준인 20석이기에 일부라도 탈당하면 당이 소멸 위기에 처한다. 이렇게 되면 보수야당이 다시 박근혜 시대의 정치문화로 퇴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야당으로 문재인 정권을 상대하긴 어렵다.

바른정당은 시대정신이나 보수의 재구성이란 관점에서 존재 가치가 적잖다. 바른정당이 지금이라도 똘똘 뭉쳐 눈앞의 선거보다 3~5년 뒤 미래를 보면서 혁신·개혁·서민 보수의 꿈을 키운다면 자유한국당과 얼마든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른정당은 지난해 촛불 정국 때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는 친박 세력의 민주주의 파괴를 거부하고 집단 탈당을 결행한 용감한 정치세력이었다. 한국당에서 그들을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를 봉건시대나 조폭의 의리 정치로 인식하는 단견일 뿐이다. 한국당은 바른정당을 집어삼키려 하기 전에 큰 몸집 때문에 멸종한 공룡의 비극을 새겨 보길 바란다. 바른정당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은 명분도 원칙도 없는 철새 정치인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경구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