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뉠 땅 없는 막장 인생을 그림으로 토해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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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08면

[정재숙의 공간탐색] 탄광촌 화가 황재형의 화실

천장이 아득히 높은 황재형 화가의 작업실은 탄광 막장 같은 비장한 분위기가 서려 있어 찾는 이를 경건하게 만든다. 안충기 기자-화가

천장이 아득히 높은 황재형 화가의 작업실은 탄광 막장 같은 비장한 분위기가 서려 있어 찾는 이를 경건하게 만든다. 안충기 기자-화가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인간이 절망하는 곳은 다 막장 #삶의 마지막 희망이 별처럼 빛나 #80년대 운동권 궤멸은 #이론과 실천 통합 못 시킨 탓 #광부들, 나의 예술보다 땀 원해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화가인 안충기 기자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이 연재물의 열세 번째 주인공은 화가 황재형(65)이다. 그림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로 만들고자 태백 탄광촌으로 떠났던 청년은 이제 그 막장을 초월해 문명의 질주와 인간성의 상실로부터 새로 찾아 나서야 할 땅으로 캔버스를 붙들고 정진하는 장부가 되었다. 그는 삶의 희망을 그림에서 구하는 그림 광부다.


검은 턱수염, 검은 작업복, 검은 모자의 ‘탄광촌 의상’을 한 황재형 화가.

검은 턱수염, 검은 작업복, 검은 모자의 ‘탄광촌 의상’을 한 황재형 화가.

두툼하고 따듯한 손이 덥석 먼저 손님을 반긴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다는 말이 따르고, 텁수룩한 수염에 시꺼먼 작업복과 검은 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을 아는 데는 손이 제일이라 했던가. 악수만으로도 그의 인생 반 너머가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탄광촌의 화가는 칙칙한 검정 일색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자신도 광부가 되어 그들의 막장 인생을 그렸던 화가는 “막장에선 삶의 마지막 희망이 별처럼 빛난다”고 했다.

“1982년 가족을 이끌고 태백에 내려왔을 때는 어두침침한 선술집 분위기가 좀 거시기했는데 요즘은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네요. 이곳도 지난 30여 년 경기 따라 이리 몰리고 저리로 흩어지고 난리굿을 했는데 그걸 모두 지켜본 저로서는 오히려 차분하게 버티며 증언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이제는 떠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묻는 분에겐 이렇게 말하죠. 난 여자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는 남자가 아니요.”

화가 황재형(65)씨는 잊히지 말아야 할 땅과 사람의 기억, 자취를 무던히 좇아 왔다. 도시 사람들이 탄광을 막장이라 치부했을 때 그는 “막장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 서울이 더 탄광 같지 않은가. 그 속에서 시름하는 실업자들 가운데 광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수십 년 자신의 전시회 제목으로 일관하고 있는 ‘쥘 흙과 뉠 땅’은 손에 쥘 흙은 있어도 몸을 누일 땅은 없는 사람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 시대 풍경을 은유한다.

강원도 태백시 문예1길, 태백문화회관 옆 골목 주택가에 있는 그의 화실은 높직한 천장이 그림의 성전 같은 경건함을 불러일으켰다. 부옇게 탄진이 날리는 갱도에서 안전등을 서로 비추며 도시락을 먹던 막장의 추억, 어머니 배 속 같기도 했던 그 굴속의 치열함이 그의 작업장에 서려 있다. 문간 입구에는 물감 통이 벽마다 층을 이루며 빼곡 쌓여 있다. “한때는 돈만 생기면 물감을 샀다”는 화가의 말이 실감 났다. 끼니 걱정을 하면서도 그림이 더 고파서 물감 살 일을 궁리했던 가난한 화가의 회한이 사무친다.

“저는 80년대 운동권 궤멸은 인내력 부족, 이론과 실천을 통합 못 시킨 탓이라 봅니다. 사북과 정선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는 구경꾼일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광부들은 나의 예술보다 땀을 원했거든요. 마당패를 만들고 벽화운동을 벌이며 미술캠프를 시작한 것도 그들과 나를 붙들어 매겠다는 선언이었죠. 시대에 절망했으나 소생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함께 있겠다는 뜻을 그림으로 토해 냈습니다.”

태백을 그의 제2의 고향으로 삼게 했던 늙은 탄부들, ‘엄니’ 같은 마음으로 그를 새 땅에 뿌리내리게 했던 선탄부는 사라졌다. 인간 노동을 변화시키는 돈의 위력, 자본주의의 횡포가 흙을 말려 버리고 있다. 2020년께 탄광은 모두 문을 닫는다. 관광은 이 지역을 선전하는 미끼일 뿐 여전히 없는 사람들은 뉠 땅을 잃는다. 캔버스 밀어 놓고 소주만 마시는 날도 꽤 된다는 그는 불평 없이 나무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며 새 일과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산소량이 좋고, 공해 없고, 질병 일으키는 요인이 적으니 요양 시설이 들어서기 딱 좋죠. 초고령사회에 맞춤한 실버산업은 어떨까 궁리 중입니다. 지역이 살고 사람도 행복해지는 일에 손을 보태고 싶어요.”

그는 오는 11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전시회에 ‘머리카락’ 그림과 바이칼 호수의 대자연을 그린 흑연 작업 ‘거대한 침묵’을 선보인다. 민족의 시원을 찾아 긴 여행을 하며 그는 주문하듯 외웠다. ‘제발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라’ ‘사사로운 것에 묶이지 말자’.

인간의 내리막길인 막장, 그 낮은 곳으로 하강했던 화가는 수천만 년 전 인류의 탄생을 지켜본 바이칼 호수, 그 높은 곳으로 비상한다. 두 곳 모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생명의 빛을 끌어올리는 극지다. 그는 무엇을 보고 그렸을까. 화가는 자신이 그린 ‘엄니의 얼굴’ ‘아버지의 자리’처럼 눈이 촉촉이 젖어든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정겨움이 있는 한 삶은 꺾일 수 없지요.”


윤두서 ‘자화상’과 통하는 머리카락으로 그린 광부

황재형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의 재료를 과감하게 화폭에 투입하는 것이다. 1979년 화가 행세에 지친 마음으로 탄 태백선 열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붓질이 광부의 삽질과 과연 같은가를 고민해 왔다. 작품과 생활이 하나 되는 그 돌파구가 탄광촌의 일상에서 거둬들인 다양한 물질이다. 탄가루가 화면 구석구석에 짓이겨지고 누런 흙을 두껍게 쳐올린 화폭은 우리 인생사처럼 구불텅구불텅 요동친다. 번들번들 기름기가 많은 유화 물감이 느끼할 때 그는 흙과 탄가루로 범벅된 거칠한 화면을 만든다. 그것이 더 우리를 닮았다고 믿는다. 광부의 진폐증 사망진단서, 버려진 탄광 사택에서 나온 합판과 철망이 그대로 작품으로 녹아들어 사라진 사람들과 한 시대를 추모한다.

화가는 요즘 머리카락 그림에 빠져 있다. 광부의 초상, 선탄부의 얼굴, 기다리는 사람들 등 그의 옛 작품이 머리카락만으로 새 생명을 뿜어낸다. 사람의 정수리에 붙어 있는 털이 화폭에서 선율을 일으키고, 뭉치면서 강인함을 토해내는 걸 보면 현실주의 미술 역사에서 이런 비장한 묘사는 처음 아닌가 싶다. 한국 초상화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시대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위)과 황재형의 머리카락 그림 ‘광부 초상’을 나란히 놓으니 기가 통한다. 300여 년을 뛰어넘은 두 인물의 조우가 느껍다.



황재형
1952년 전남 보성 생.
80년대 초 한국 현실주의 미술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여일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는 탄광촌 화가. 인간의 본질, 역사와 현실을 꿰어 보는 주제 ‘쥘 흙과 뉠 땅’을 제목 삼은 개인전을 꾸준히 열어 왔다.

중앙대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임술년’ 동인으로 활동하다 태백으로 내려간 뒤 지역의 미술인들과 ‘함께 나누며 같이 바라보기’를 내건 태백미술연구소를 열어 20년째 미술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80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93년 민족미술상, 2016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받았다.


태백=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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