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0분의 1초까지 계산한 컴퓨터 발사기, 불꽃쇼 이젠 과학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오늘 한강 밤하늘 10만 개 불꽃 펑 펑 펑 

지난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 2016’ 모습. ‘서울 하늘에 핀 무지개꽃 그리고 불꽃’이란 이름의 이 작품은 빨강·녹색·보라·노란색으로 높은 상공에서 터지는 불꽃과 그 아래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이 어우러졌다. [사진 한화]

지난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 2016’ 모습. ‘서울 하늘에 핀 무지개꽃 그리고 불꽃’이란 이름의 이 작품은 빨강·녹색·보라·노란색으로 높은 상공에서 터지는 불꽃과 그 아래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이 어우러졌다. [사진 한화]

어둠이 내린 공활한 하늘. 10만 개가 넘는 불꽃이 검은 창공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하늘을 캔버스 삼고 불꽃을 물감 삼아 그려 내는 불꽃축제는 국내에서도 익숙한 연례행사가 됐다. 여름휴가 시즌에 열리는 ‘포항국제불빛축제’를 비롯해 국내 최대 불꽃쇼인 ‘서울세계불꽃축제’, 만추의 광안리 밤바다를 물들이는 ‘부산불꽃축제’에는 매년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다.

타이밍·각도·높이 등 정밀 조절 #음악 리듬 하나하나에 맞춰 쏘아 #80m 높이 기준 타상·장치불꽃 구분 #“색상보다 기승전결 구성에 더 환호” #피날레는 섬광등 불꽃 + 웅장한 음악 #방수처리돼 보슬비 날씨도 괜찮아

과거 궁중 행사나 귀족들의 연회에 주로 쓰였던 불꽃은 16세기 이후 서민들의 오락이나 유희를 위한 ‘불꽃놀이’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이후 불꽃놀이에 음악이 더해지면서 축제 형태를 띠게 됐다. 특히 최근엔 컴퓨터 발사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연출 기술이 어우러지면서 첨단기술과 예술이 융합한 문화 콘텐트로 진화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매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선보이는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위험한 화약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마음을 흔드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불꽃 전문가 등 수십 명은 9월 30일 진행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17’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서울 선유도공원 선착장에 10만 개가 넘는 ‘불꽃’을 하나하나 설치했다. 불꽃은 둥그런 박처럼 생겼는데 ‘옥’이라고 부른다. 이 옥을 관 모양의 발사대에 넣고 도화선을 점화해 쏘아 올리는 원리다. 과거엔 직접 불을 붙이거나 전기를 연결해 점화했지만, 최근엔 컴퓨터 발사기를 쓴다. 발사 시점을 무려 30분의 1초까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음악이든 리듬 하나하나에 맞춰 불꽃을 쏘아 연출할 수 있다.

컴퓨터 발사기에는 10만 개의 불꽃이 각각 언제 어느 각도와 높이로 발사될지 디자인된 프로그램이 다운로드돼 있다. 예를 들어 ‘A 불꽃은 1분 1초 1프레임에 왼쪽 30도 각도로 터진다’고 프로그래밍된다. 이를 위해 10만 개 불꽃에는 각각 숫자와 알파벳으로 이뤄진 고유한 번호가 붙는다. 이 불꽃들이 모듈 기기에 연결되고 모듈이 발사기에 연결돼 정해진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사되는 것이다.

불꽃은 크게 ‘타상불꽃’과 ‘장치불꽃’으로 나뉜다. 보통 지상으로부터 80m 이상 올라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을 타상불꽃이라고 한다. 동그란 옥 안에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될 ‘성(Star·화약)’을 배열하고 외부를 질긴 종이에 풀을 발라 첩첩이 붙인다. 종이를 여러 번 발라 두르면 불꽃이 터질 때 압력을 고루 받게 돼 짱짱한 해바라기 모양의 동그란 원형 불꽃이 표현되고, 그보다 덜 두르면 힘없이 하늘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불꽃 모양이 된다. 올해 축제에선 100m 상공에서 눈물을 흘리듯이 40초 동안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불꽃’이 등장한다. 낙하산에 불꽃을 매달아 불똥이 주르르 흘러내리게 만든 것으로, 임팩트는 크지 않지만 잔잔한 음악에 맞춰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지상으로부터 80m 이하에서 터지는 불꽃은 장치불꽃이라고 부른다. 타상불꽃보다 화약량이 적은데 가수들이 노래하는 무대 주위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분수불꽃’이나 약 20초 동안 사이키 불빛처럼 깜박깜박거리는 ‘사이키 불꽃’ 등 주로 아기자기한 연출에 사용된다.

한화 불꽃프로모션사업팀 손무열 상무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엔 불꽃도 조금 느리게 부슬부슬하게 내리게 하고, 빠르고 힘찬 음악에는 불꽃이 고조장단에 맞춰 정확하게 터지게 연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꽃놀이라고 해서 대충 쏘면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굉장히 과학적으로 구성돼 있는 기술공연”이라고 강조했다.

불꽃의 채색도 중요하다. 색상을 얼마나 조화롭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예술성이 결정된다. 이 작업은 ‘불꽃 디자이너’들이 맡는데 미술 전문가는 물론 화학공학을 전공한 인력도 많다. 디자이너들은 불꽃 크기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사용해 다양한 불꽃 모양을 그려 본다. 강하고 웅장한 음악에는 불꽃의 각도를 벌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잔잔한 음악에는 소량의 반짝이는 불꽃을 시작으로 점점 불꽃 수를 많게 해 감동을 배가시킨다.

흥미로운 건 나라마다 선호하는 불꽃색이 다르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진한 빨강, 주황빛이 감도는 빨강 등 붉은색 불꽃을 좋아한다. 유럽 국가들은 핑크빛, 에메랄드 빛, 노란색을 머금은 보랏빛 등 톤이 부드럽고 섬세한 색상을 선호한다. 한국은 어떨까. 한화 불꽃프로모션사업팀 윤두연 디자이너는 “우리나라는 원색과 부드러운 톤의 색상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라며 “색상보다 구성에 기승전결, 변화가 많아야 환호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행사도 처음에는 약한 불꽃으로 시작한 뒤 강하게 터지게 하고 마지막은 화려하게 마감한다. 가장 볼 만한 장면은 마지막 부분이다. 지난해의 경우 황금빛이 하늘에 오랜 시간 머무는 불꽃으로 마무리했지만, 올해는 엄청난 광량을 지녀 하얗게 눈이 부신 ‘섬광등(strobe) 불꽃’을 웅장한 음악과 함께 터트려 가슴 벅찬 피날레를 장식한다. 윤 디자이너는 “이 불꽃이 터지면 그 순간만큼은 아무리 어두워도 주변의 건물,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가 다 보인다”고 귀띔했다.

불꽃축제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하늘이 도와줘야 성공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날씨’는 맑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상태다. 바람이 너무 잔잔하면 불꽃이 터졌을 때 나오는 연기가 대기에 고여 다음번 터지는 불꽃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게 된다. 불꽃은 자체 방수처리가 돼 있어 보슬비 정도는 괜찮지만 행사 직전 폭우가 쏟아질 경우 화약이 많이 젖어 문제가 생긴다.

손무열 한화 상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음악과 퍼포먼스 등 소프트웨어 부분을 강화해 마치 하나의 공연처럼 연출하는 ‘멀티-퍼포밍(Multi-Performing) 불꽃쇼’로 발전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S BOX] 일본 오마가리 불꽃쇼, 매년 입장 수익만 30억원

불꽃놀이는 축제나 쇼·경연 형태로 진화해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최대 불꽃쇼인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불꽃축제’는 매년 6월 중순에서 7월 말 테마파크인 ‘라롱드’에서 펼쳐진다. 다양한 국가의 쇼가 펼쳐진 뒤 우승국을 뽑는 경연형태로 진행해 긴장감을 더한다. 불꽃과 놀이공원을 연계한 덕에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300만 명이 찾는 관광상품으로 명성이 높다. 7500석의 좌석을 유료화해 약 25억원의 입장수익도 내고 있다.

일본 아키타현의 오마가리(大曲) 강변 일대에서 매년 8월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오마가리 불꽃대회’는 일본의 많은 불꽃축제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손꼽힌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전국에서 선발된 불꽃 장인들이 화려한 기술을 경쟁한다. 특히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판매해 부가가치를 내고 있는데, 매년 75만 명 이상이 찾아 입장수익만 30억원에 달한다.

한 해의 끝인 12월 31일에 열리는 호주의 ‘하버 브리지 새해맞이 불꽃축제’는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불꽃축제다. 약 150만 명이 운집하는 이 행사는 특수조명을 비롯해 매년 행사 주제에 맞는 ‘메인 이미지’ 시스템을 도입해 멀티미디어 쇼를 펼친다. 축제가 인기를 얻으면서 성인 한 명당 45달러(약 5만원)부터 좌석을 유료화하고 스폰서 판매존(zone) 등을 도입해 수익모델을 다양화하는 추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