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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시, 알시의 시인 정진규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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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정진규 시인. [중앙포토]

생전 정진규 시인. [중앙포토]

 몸시, 알시 등을 통해 한국 산문시의 한 영역을 개척했던 시인 정진규씨가 28일 밤 11시 5분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영면했다. 79세.
 1939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국문과에서 조지훈에게 시를 배웠다.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60년대 대표적 시 동인지였던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77년 3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에서 선보인 특유의 산문시는 관념적인 내면의식과 현대성 추구에서 벗어나 시에서 일상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죽음과 소멸에 맞서는 투쟁의 교두보로 인간의 신체를 상정한 몸시(94년 9시집 『몸시』), 순수 생명을 상징하는 알시(97년 10시집 『알시』)의 시기를 거쳐 2004년 12시집 『본색(本色)』에서 불교와 노장적 인식, 자연친화적 생명관을 아우르는 세계로 발전했다.
 고인은 평생 변화를 추구하고 안주를 거부한 시인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의 입체화'를 위해 시극, 시춤, 먹춤 등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고, 경산(絅山)을 필명으로 '정진규 시서전'을 열기도 했다. 2006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이 들면 '뭐든지 시다'라는 버릇이 들 수 있다. 그럼 시가 평면화된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죠"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88년 회사를 그만두고 전봉건 시인이 운영하던 월간 시전문지 '현대시학'을 맡아 2013년까지 운영했다. 새로운 시 발표 지면이었을 뿐 아니라 한양대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 산책', 오규원 시인의 시 창작법을 연재해 반향을 불렀다. 이하석·이윤택·최승호·고정희·최정례·신현림·이진우·이선영·우대식·조창환·김언희·이나명·성미정·조말선·정병근 등이 고인이 잡지 운영을 맡기 전 혹은 맡은 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들이다. 잡지 자체 수입이 형편없어 크게 부족한 재정을 중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꾸렸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시인협회상·월탄문학상·현대시학작품상 등을 받았다. 시집으로 『마른 수수깡의 평화』『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도둑이 다녀가셨다』, 시론집『질문과 과녁』이 있다.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 발인 10월 1일 오전, 장지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선산.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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