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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여걸,흙수저...일본 선거전 달구는 3인의 보수파 쇼군

중앙일보

입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그리고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다음달 22일 투ㆍ개표가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 판도를 흔들고 있는 세 사람이다.
유아독존의 장기 집권을 이어가기 위해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 카드를 뽑아들자, 아베를 막아설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던 '여걸' 고이케는 물밑에서 준비해왔던 신당(희망당)대표직을 수락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아베 1강' 구도 깨려 야권 보수파 리더 뭉쳐 #고이케, 지사 취임 후 야스쿠니 안 가 "아베와 차별화" #자수성가한 마에하라, '지한파'지만 안보는 보수 #운신의 폭 좁아지는 호헌세력…북한발 위기가 부채질 #

일본 정가를 경악케 한 건 제1야당인 민진당의 대표 마에하라의 폭탄 선언이었다. 그는 지난 28일 "당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고이케 당을 통해 후보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6일 도쿄 도내에서 고이케와 극비리에 만났던 마에하라가 '제1야당이 공중분해되더라도 아베와 자민당의 집권 연장은 반드시 막겠다'는 각오로 던진 승부수였다. 이로서 선거전은 아베와 고이케가 모든 것을 내걸고 격돌하는 1대1 구도가 선명해졌다.
아베와 자민당의 '힘'과 고이케의 '바람'이 충돌하는 안갯속 판세속에 28일 공식 해산한 일본 중의원은 25일간의 진검승부를 앞두고 있다.

 건곤일척의 싸움에 임하는 아베와 고이케, 그리고 선거판을 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등장한 마에하라는 모두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보수파 리더이자 개헌 찬성론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주도하는 이번 선거전을 두고 '일본 정치의 보수화,우경화 경향을 더 돋보이게 하는 무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 승리에 외조부(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때부터의 숙원사업인 '헌법 개정'의 성패여부가 걸려있는 아베 총리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고이케의 보수 이력도 만만치 않다.

"순수한 이념적 성향만으로 평가하면 아베보다 더 오른쪽"이란 평가가 많이 나온다. 그는 2003년 언론 인터뷰에선 "군사,외교적 판단에 따라 핵무장 선택지는 있을 수 있다"고 핵 무장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에 소속된 그는 평화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지난 25일 NHK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베가 "고이케도 개헌에 전향적"이라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고이케는 각료 시절엔 패전일인 8월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고약한 도발을 자주 감행했다.특히 2007년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채택을 막기위해 미국까지 가서 반대로비를 하기도 했다.  지난 1일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식’때엔 '지사 선배'이자 내로라하는 우익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조차 과거 꼬박꼬박 보냈던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 27일 '희망의당' 창당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지지통신]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 27일 '희망의당' 창당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지지통신]

이렇게 보수색이 뚜렷하고 자기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일컫는 고이케지만 지난해 7월 지사가 된 뒤엔 행동방식을 조금 바꿨다. "너무 정치적인 색채가 뚜렷해 위화감이 든다"는 이유로 '일본회의'도 잘 찾지 않았고, "항상 마음속엔, 전몰자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직접 야스쿠니를 찾지는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아베 총리와의 차별화를 위한 의도된 변신"이란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마에하라는 어떤가. 그는 일본내에서 대표적인 자수성가 정치인으로 꼽힌다.
중학교 2학년때 교토 가정법원 직원이던 부친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어머니의 뒷바라지속에 성장했다. 법원에서 근무했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법률 관련 서적들을 많이 접했다. 이런 인연들때문에 마에하라는 명문인 교토대 법학부에 재수끝에 진학했다. 학비를 벌기위해 관광 버스 가이드,생선가게 직원,다방 종업원,학원 강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뛰며 ‘잠도 거의 자지 않고’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이후 ‘경영의 신’ ‘우국의 철학자’로 추앙 받는 마쓰시타그룹(현 파나소닉) 설립자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ㆍ1989년 작고)가 세운 지도자 양성기관, 마쓰시타(松下) 정경숙을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총리 외조부와 외상 아버지(아베 신타로)를 둔 '도련님' 아베와는 확연히 다른 인생을 걸어왔다.

마에하라 세이지 민진당 대표. [중앙포토]

마에하라 세이지 민진당 대표. [중앙포토]

 재일한국인에게서 정치 헌금을 받은 경력때문에 외상에서 물러나기도 했던 그를 '지한파'로 부르기도 하지만 외교 안보적 성향만큼은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의 보수적 학풍의 영향일까. 그는 아베가 주장하는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아베 보다 먼저 제안하기도 했고, 늘 일본의 적극적인 군사 역할을 강조해왔다.

이들 세 사람의 대활약속에 중의원 선거전은 '보수강경파, 그돌만의 리그'로 흐르고 있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호헌 세력', 소위 리버럴로 불려온 진보 세력의 목소리는 희미해졌다.

2009년 8월부터 3년여간의 민주당(민진당의 전신) 집권기가 '혼란과 실패'의 기간으로 낙인 찍히면서 야권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감이 사라진 게 첫째 이유로 꼽힌다. 이달초 민진당 대표경선에서 당내 리버럴 세력을 대표했던 에다노 유키오 의원이 보수파인 마에하라에게 무릎을 꿇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자민당의 아류'가 아닌 정통 진보좌파를 지향했던 사민당은 공산당에 밀릴 정도로 당세가 몰락했고, 공산당은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 평화를 주창한다는 공명당은 자민당과 연립정권으로 묶여있어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일본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이들에겐 불리하다. 일본 정가에선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과 중국과의 갈등 상황 등이 이어질 경우 일본내에서 진보파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은 더 좁아들 수 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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