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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망신 주기식 세무조사만으로 부동산 잡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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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세청이 부동산 가격 진정을 위해 세무조사 칼날을 빼 들었다. 재건축 아파트 취득자 및 다주택 보유자 중 탈세 혐의가 짙은 302명을 대상으로 변칙 자금 조성 및 양도소득세 탈루 여부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특별한 벌이가 없는 가정주부가 15억원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 소득을 낮게 신고한 의사가 32억원 상당의 아파트 3채를 구입하는 등의 사례도 공개했다.

자금 출처가 불투명한 개인이 거액의 부동산을 샀다면 당연히 세무조사 대상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 시점에 그 사실을 알린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8·2 부동산 대책’ 이후 꺾이는 듯했던 부동산값은 최근 2주 연속 상승세로 반전했다. 재건축 수주전이 치열한 서울 강남은 이달 들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근처 일반 아파트까지 덩달아 오르는 현상도 보인다. 정부 규제를 피한 수도권 일부 지역과 지방 대도시에서의 청약 열기도 식지 않고 있다. 이런 과열 심리를 잠재우자는 게 정부의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값 상승은 저금리와 주택 공급 부족 등 여러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세무조사 같은 망신 주기식 처방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줄어든 공공주택 공급을 크게 늘려 주택 부족에 대한 시장의 막연한 불안감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다. 장기적으론 보유세 인상과 거래세 인하를 통해 불필요한 부동산 보유를 억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규제할수록 가격이 오르더라’는 노무현 데자뷔 현상을 차단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국은행의 9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다른 부문과 달리 유독 주택가격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만 한 달 새 4포인트 올랐다. 한은 기준금리를 올리는 정공법도 검토할 때가 됐다. 두더지 잡기식의 감정적 대응으론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