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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적폐에도 좌우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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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도처에 ‘말폭탄’이다. 송곳니를 드러낸 조롱과 협박이 태평양 상공을 날지만, 나라 안에서 오가는 가시 돋친 비아냥과 야유가 더 무섭다. 일촉즉발 공포 위에 분위기 모르고 내려앉은 먼지 같은 말들이기에 역겹거니와, 그걸 쏟아내는 이들에게 국가 운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가 두렵기만 하다.

대접받고 싶은 걸 대접하라는 성경 #좌우 모두 자기 적폐부터 청산해야

모든 게 남의 눈 속 티끌은 보면서 제 눈 속 대들보는 느끼지도 못하는 ‘속 편한’ 시력 탓이다. 하긴 내 대들보를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뿐 아니라 동서고금 인류에게 모두 그렇다. 숱한 금언들이 나온 게 그래서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공자의 말이 그렇다. 『성경』에도 나온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힌두교 역시 같은 황금률이 있다. “네게 고통을 안겨줄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말라.” 토머스 홉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규정한 제2의 자연법도 다른 게 아니다. “인간은 (…)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타인에 대해 가진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리바이어던』).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도 실천이 어렵거늘, 불행하게도 우리는 오래도록 그런 교훈조차 갖지 못했다. 그래선가 사전에 막지 못하고 사후에 혀를 차는 자조(自嘲)만 남았다. 여야가 따로 없고 좌우가 동색(同色)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말이다. 어제까지 내가 하던 걸 오늘 남이 한다고 거품을 문다. 그러다 감정이 상해 고소·고발전이 벌어진다. 정권의 방향에 따라 한쪽에선 청산해야 할 적폐요, 다른 쪽에선 더러운 정치보복이 되기를 반복한다.

매사 그렇지만 그런 구태의 극복 또한 마음먹기에 달렸다. 주옥 같은 금언들이 와 닿지 않는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적폐에도 좌우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좌파의 적폐는 좌파가, 우파의 적폐는 우파가 청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적할 참이지만, 우선 떠오르는 경직된 고용시장이야말로 좌파 정부가 청산해야 할 대표적 좌파 적폐다. 좌파 정부가 추구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맞닿는다. 한 번 고용하면 아무리 일 못하고 조직 분위기를 해쳐도 해고할 수 없다면 기업이 모든 직원을 정규직화할 엄두를 내겠냔 말이다. 기업 생산성이 떨어져도 임금은 올려야 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알바 시장’을 떠도는 현실이 여기서 출발한다.

이런 걸 우파 정권에서 개혁하려 했으니 엄청난 저항에 실패가 예정됐던 거다. 현 좌파 정부가 전 정권의 ‘양대 지침’을 폐기할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지지 기반인 노동계를 설득해서 진정한 노동개혁의 첫발을 뗄 수 있는 기회였다는 말이다. 야권의 협조를 받을 수 있을 테니 국회선진화법도 두려울 게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신화가 다른 게 아니다.

우파 정권이 할 일은 국정교과서나 건국절 제정이 아니었다. 차라리 복지를 손봤어야 했다. 한정된 자원이지만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힘써야 했다. 마찬가지로 야권의 협조를 얻었을 테고, 지금 정권의 ‘퍼주기 복지’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터다. 정권을 내놓은 뒤에는 그 이유가 됐던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을 처절하게 감내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서 비판만 늘어놓으니 공허한 소리로 들리는 거다. 좌파건 우파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뭔가를 기여하고자 정치에 뜻을 품었을 터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왼쪽과 오른쪽 주머니 속에 손을 깊숙이 넣어 나 자신의 적폐부터 꺼내 던지는 일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