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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심리전단, MB정부 비판 세력 여야 막론하고 제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과 교수들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 활동을 해왔다고 국정원 개혁위가 25일 밝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사회 각계 인사에 대한 심리전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위는 25일 심리전단이 MB정부 비판세력에 대해 제압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국정원 개혁위는 25일 심리전단이 MB정부 비판세력에 대해 제압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개혁위에 따르면 주요 비판 대상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민의당 박지원, 민주당 송영길 의원 등 당시 야당 정치인은 물론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안상수 창원시장 등도 포함됐다. 또 진보색이 짙었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도 비판 대상이었다.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정부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저명 인사가 ‘표적’이 됐다. 개혁위가 이날 공개한 대상은 모두 21명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2017.08.30 김상선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2017.08.30 김상선

심리전단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정부 비판이 늘자 ‘盧 자살 관련 좌파 제압논리를 개발 계획’, ‘자살 악용 비판 사이버 심리전 전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친노ㆍ야당의 정략적 기도는 정치재기를 노린 이중적ㆍ기회주의적 행태로 몰 것’ 등의 대응 논리를 만들었고 심리전단은 다음(Daum) ‘아고라’ 토론방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글 300여 건, 댓글 200여 건을 게재했다.

2011년엔 ‘4대강 사업장 폐콘크리트 매립’을 주장한 조국 수석(당시 서울대 교수)가 타깃이 됐다. 심리전단을 그를 ‘정치교수의 선동’으로 규정하고 심리전을 전개했다.  그 후 “조국 교수는 양의 탈을 쓰고 체제변혁을 노력하는 대한민국 늑대다”, “천안함, 연평도 북 도발을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글들이 트위터 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또 2010년 당시 통합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폄훼하자 심리전단은 ‘박지원 망동 강력 규탄 사이버심리전 전개’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그의 ‘대북송금, 뇌물수수 전력 폭로기사’등을 다음 ‘아고라’에 올렸다.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에 대해선 ‘종북행각 규탄 전략 심리전’을 실행했고, 곽노현 전 교육감을 상대로는 ‘곽노현ㆍ전교조 부도덕성 공략 심리전’이 이뤄졌다. 국민의당 정동영ㆍ천정배 의원, 김만복 전 국정원장, 유시민 작가,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등도 공격 대상이었다.

심리전단은 당시 여당 인사들에 대해서도 비방전을 폈다. 2011년 당시 홍준표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 “아군이 전멸하면 홀로 정치하려는가? 집안 흉봐서 뜨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보수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현 국민의당 의원)가 MB 정부를 비판하자 국정원은 그를 좌파 교수 규정하고 ‘카멜레온 정치교수 자진 사퇴하라’며 퇴출 여론을 조성했다.

국정원은 심리전과 동시에 ‘오프라인’ 활동도 병행했다. 보수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워치’(대표 변희재)에 대해선 창간 재원을 마련해주고 국정원 정보관들을 통해 정기구도과 광고지원을 돕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개혁위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ㆍ홍보ㆍ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지방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동향 정보 수집을 지시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댓글 등 비방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는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혁위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정치관여 및 업무상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야권분열을 노리는 이간질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측은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와 관련,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입장 표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시기와 방법 등은 이견이 있지만 '입장 표명을 한다'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훈ㆍ유성운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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