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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론은 정치인 '리콜권' 요구, 국회는 소극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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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을 ‘정치참여권 신설’로 표현했다. 중앙일보가 17∼18일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개헌할 경우 새 헌법에 담을 기본권을 질문한 데 따른 결과다. 여론조사는 9개의 기본권을 제시한 뒤 복수 응답으로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민은 망명권을 제외한 8가지 기본권을 고루 선택한 가운데 생명권(41.9%)과 안전권(38.8%)에 이어 정치참여권(34.4%)을 세 번째로 많이 골랐다. 정치참여권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권, 국민이 법안을 낼 수 있는 국민발안권 등이다. 현 헌법에는 이들  권리가 없다.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원회의 기본권 분과는 개헌안을 마련하며 이 세 가지 정치참여권을 모두 포함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정치적 소양이 낮고 민주주의가 정착돼 있지 않을 경우 국민소환 등은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한 정쟁에 악용될 수 있다”며 “하지만 이젠 우리 사회도 정치인들의 반헌법적 행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정치참여권을 검토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정치참여권은 그러나 국회의원 전수조사에선 끝에서 두 번째인 뒷순위로 밀렸다. 정치참여권 도입에 소극적인 여의도의 속내를 보여준다.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는 "지난 탄핵 정국은 엄밀히 보면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제도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리콜' 수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국민 여론과 여의도 여론이 공통적으로 많이 선택한 안전권과 생명권은 모두 ‘인간 존중’과 관련돼 있다. 생명권은 자신의 생명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이고, 안전권은 재난을 포함한 각종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신체와 재산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다. 개헌 운동을 추진 중인 대화문화아카데미의 강대인 원장은 “세월호 참사 등을 경험했던 한국 사회에 생명 존중과 안전에 대한 갈구가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신필균 헌법개정여성연대 대표는 “생명권을 조문화하면 예컨대 우리 사회의 극빈층이 굶어 죽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보기본권은 개인의 건강ㆍ신체ㆍ신념ㆍ신분 등의 정보가 악용되지 않도록 보호받거나 스스로 자기 정보의 노출 여부와 범위 등을 결정할 권리(개인정보자기결정권)다. 우리 헌법엔 조문화돼 있지 않고 사생활의 자유를 토대로 해석상 권리로 인정된다. 반면 2001년 유럽연합(EU)은 기본권 헌장에 개인정보보호권을 독립된 기본권으로 명문화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관련한 신상정보의 보호권을 갖는다’(8조)고 명시했다. EU의 기본권 헌장은 유럽 28개국에서 지침으로 준수되고 있다. 이상수 국민주권회의 공동대표는 “이젠 정보에 대한 관리권ㆍ결정권ㆍ접근권이 매우 중요한 개인 권리로 대두된 상황”이라며 “헌법 명문화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훈·김록환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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