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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어" 명령한 이유가…속속 드러난 청주 20대 여성 살인 사건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험담했다는 이유로…15년지기 언니 죽음 지켜보며 방조

19일 오전 20대 나체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하천 둑길. [연합뉴스]

19일 오전 20대 나체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하천 둑길. [연합뉴스]

청주 20대 여성 나체 살인사건의 전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충북 청주 하천 둑에서 옷이 벗겨져 숨진 채 발견된 20대 여성은 학창시절부터 알게 돼 15년 동안 자매처럼 친분을 유지해왔던 '동네 동생'의 남자친구에 의해 잔혹하게 폭행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 '동네 동생'은 피해자가 숨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20일 오후 청주 흥덕경찰서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긴급 체포된 A씨(32)가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청주 흥덕경찰서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긴급 체포된 A씨(32)가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는 지난 19일 오전 6시40분쯤 마을 주민에 의해 옷이 벗겨져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머리를 둔기에 맞아 함몰됐고 몸에도 구타로 생긴 상처가 여럿 나 있었다. 얼굴에 멍이 들고 치아가 손상되는 등 폭행 흔적도 발견됐다. 시신이 놓여있던 하천 둑에는 핏자국이 곳곳에서 묻어있었다.

◇'농사용 말뚝'까지 휘두른 잔혹한 범행
지난 18일 밤 술을 마신 피의자 A(32)씨는 피해 여성 B(22·여)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험담하고 다닌다는 여자 친구 C(21)씨의 말에 화가 났다.

술기운이 오른 A씨는 C씨를 태우고 지난 19일 0시 20분쯤 자신의 승용차를 몰아 청주시 흥덕구 B씨의 집으로 찾아가 "조용한 곳에서 얘기하자"며 그를 차에 태웠다.

세 사람이 탄 승용차는 30여분을 달려 흥덕구 옥산면 하천 근처로 이동했다. 이곳은 도심과는 10㎞ 이상 떨어져 인적이 드문 시골이었다.

차에서 내린 A씨와 B씨는 말싸움을 했고, A씨가 욕을 하자 B씨는 "욕하지 말라"고 맞섰다.

분을 참지 못한 A씨는 주먹과 발로 B씨를 수십 차례에 걸쳐 무차별적인 폭행을 했다. 이어 하천 둑 옆 들깨밭에 세워져 있던 둔기(농사용 말뚝)를 뽑아 폭행하자 B씨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성폭행으로 위장"
B씨는 무자비한 폭행에 의식을 점점 잃어갔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을 알게 된 A씨는 B씨에게 옷을 벗으라고 윽박질렀다. 사건을 성범죄로 위장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었다. A씨는 알몸이 된 B씨를 수차례 더 폭행했고, 결국 목 졸라 살해했다.

숨진 B씨의 스마트폰과 지갑을 챙긴 A씨는 시신을 풀숲에 유기한 뒤 이날 오전 2시 35분께 C씨와 함께 범행 현장을 빠져나왔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폐쇄회로TV(CCTV) 등을 분석하고 탐문 수사를 펼쳐 A를 용의자로 특정, 추적에 나서 20일 오전 1시 10분께 강원 속초로 달아난 그를 긴급체포했다.

◇"아이 학대했다" 험담에 살인
B씨는 C씨와 15년 넘게 같은 지역에 살면서 친하게 지낸 언니·동생 사이다. A씨와도 4년 전부터 알게 돼 친분을 유지해왔다. A씨는 B씨의 전 남편과도 친분이 있다. 즉 A씨는 B씨 입장에서는 전 남편의 친구이자 친한 동생과 사귀던 인물이었다.

B씨에게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세 살 배기 아기가 있었다. 전 남편은 피해자와 헤어진 후 아기를 홀로 키웠고, 일이 바쁠 때면 A·C씨에게 아기를 맡기기도 했다.

이 사이를 파국으로 이끈 것은 여기서 발생했다.

피해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A씨가 자신의 아이를 돌보며 학대한다는 내용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험담하고 다닌 것을 따지려고 만나 언쟁을 벌이다 홧김에 때려 숨지게 했다"고 진술했다.

A씨가 B씨를 살해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기만 한 C씨는 살인 방조 혐의로 체포됐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A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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