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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대선 패배 후 당대표로 돌아온 안철수 “文, 외교·안보라인 교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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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55) 국민의당 대표를 만난 9월 11일 오후 국회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효 2표)됐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은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힘줘 말했다.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직후 월간중앙과 만난 안 대표는 “8월 27일 전당대회 출마는 당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결정한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안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외교·안보와 관련해서는 “미·중과의 신뢰구축에 실패했다. 외교·안보라인은 교체돼야 한다”고 일갈(一喝)했다.(인터뷰 전문은 9월 17일 발간된 월간중앙 10월호에 실렸다)

유화책만 펴는 ‘달빛정책’은 현 상황에서 부적절 #해결책은 대북 제재 강화한 뒤 대화 견인하는 것 #소득 주도 성장은 난센스, 경제성장 주체는 민간 #지금 머릿속에 대선은 없어, 당과 운명 함께할 터

대선 패배 후 넉 달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마치 1년쯤 지난 것 같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원의 선택을 다시 받았다.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국민의당은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당을 살리라는 명령으로 받들겠다.”
얼마 전 대선평가보고서가 나왔다. ‘안빠·소통·조직 부재’를 패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는데.  
“오·탈자도 고치지 말고 무조건 원본 그대로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보니 오·탈자가 많더라(웃음).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만큼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부분들은 다 인정한다. 제대로 고치겠다.”
대선을 하루 앞둔 5월 8일 열린 대전 유세에서 안철수 국민의당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대선을 하루 앞둔 5월 8일 열린 대전 유세에서 안철수 국민의당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대통령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한 대선평가보고서를 9월 1일 공개했다. 8월 하순 박주선 비대위원장에게 접수됐으나, 8·27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공개를 미뤘다. 총 176쪽 분량의 보고서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는 있었고, 안철수 후보에게는 없었던 것들을 주목했다. 요약하면 안빠(안철수 열성 지지층)·소통·조직 세 가지다.

안 대표의 정계 복귀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당이 소멸될 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5년 후 대선을 위한 ‘경력관리’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온 몸을 던져 당을 살리겠다고 결심했다.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 비대위원장으로 나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되면 지난 대선에서 국회 원내교섭단체 정당 후보로 나온 분들이 다 복귀하는 셈이다. 유독 안철수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건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중도노선과 안철수의 극중주의(極中主義)는 어떻게 다른가?
“흔히 중도라고 하면 좌우의 중간쯤을 생각한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중도, 실천적 중도개혁 노선은 다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이념 정당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문제 해결 정당을 지향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게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극중주의는 ‘radical centrism(래디컬 센트리즘)’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radical’은 근본적인·철저한·급진적인·과격한·기막히게 좋은·끝내주는 등으로 해석된다. ‘centrism’은 중도주의다. 번역하기에 따라 ‘끝내주는 중도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바른정당과의 연대 또는 제휴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국민의당은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 멎어 있는 상태다.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게 우선인데 그런 사람한테 ‘연애하겠느냐’고 물으면 되겠는가?”
안 대표가 직접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던데.
“그 주장은 8월 당대표 경선 때 TV토론에서 상대 후보의 질의로 시작됐다. 그때 제 입장을 다 이야기했다. 당을 혁신하고 좋은 인재를 영입해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진용을 갖추는 것이 대표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다. 저 스스로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손을 든다면 그거야말로 ‘셀프공천’ 아닌가? 제가 서울시장선거에 나서겠다고 하면 서울시장후보가 될 만한 분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인재 영입 등 진용을 제대로 갖추고 난 뒤에 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에 가장 도움이 될지 생각해보겠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대를 전제로 ‘안철수 서울시장후보’, ‘남경필 경기지사후보’론이 제기된다. 양당에서 가장 상품성 있는 후보가 간판으로 나서야 승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시장선거에서 박원순 현 시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삼파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서울시장선거는 ‘미리 보는 2022년 대선'으로 판이 커질 수 있다.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한 적은 있나?
“(당대표에) 당선된 다음날 통화했다. (문 대통령이) 축하하고 협조를 바랐던 것 같다. 짧게 덕담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출범 초기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 잘한 점은 지난 정부에서 잘못했던 점들을 고치려는 노력과 탈(脫)권위주의다. 아쉬운 점은 지난 100일 동안 쏟아낸 수많은 약속이다. 절차가 잘못됐거나 세부 실행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정기국회 때 제대로 짚을 생각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정책을 평가해달라.
“소득 주도 성장정책으로 경제를 성장시킨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민간과 기업이 돼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경제성장에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만 쏟아붓고 효과는 보지 못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통령이 먼저 인사의 5대 원칙을 얘기해놓고 나중에 다 어겼다. 한두 건이면 몰라도 연속되는 것으로 봐서 인사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대선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시간부족을 꼽았다. 안 대표가 월간중앙과의인터뷰를 마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위해 재킷을 입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대선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시간부족을 꼽았다. 안 대표가 월간중앙과의인터뷰를 마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위해 재킷을 입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인사의 5대 원칙을 강조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위장전입 등에 저촉되는 인사는 고위직에 임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장,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이 인사청문회나 여론 등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지적도 많은데.
“외교·안보는 한 번 실수하면 치명적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중국과는 더하다. 심각한 국익 손실이 우려된다. 대통령이 그런 상황이라면 보좌가 잘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외교·안보라인은 북핵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로 짜여 있다. 외교·안보라인은 교체돼야 한다. 4대 강국 대사들은 경험과 경륜을 갖춘 사람으로 채워져야 한다.”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고 있나?
“햇볕정책은 강·온 양면책이다. 가장 중요한 기본은 튼튼한 안보와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전쟁을 막는 것이다. 그 다음에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서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달빛정책’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유화책이 통하지 않는다. 유일한 해결책은 미국 등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서 대북 제재를 강화한 뒤 대화를 견인해내는 것이다. 제재의 목적은 체제 붕괴가 아니라 북한이 대화를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원하는 시기·조건에 맞춰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술핵 재배치가 거론되던데.
“우리가 가진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꺼내놓고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 가지를 검토하자는 입장이다.”
전술핵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다. 모든 옵션을 꺼내놓고 미국과 의논할 때라는 이야기만 하겠다.”

1991년 9월 미국은 해외에 배치한 전술핵을 철수한다고 발표했으며, 같은 해 11월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그해 말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술핵은 모두 철수됐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6차 핵실험 등 잇단 도발을 감행하자 일각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론이 일고 있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최근 “핵 균형과 전천후 대북 억지력 유지를 위해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비핵화 전략을 주도했고, 문재인 대선캠프에서도 외교·안보 전략 마련에 깊이 관여했다. 청와대는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을 하나만 꼽는다면.
“이른바 ‘본선’이 한 달에 불과했다. 5년 임기 대통령을 뽑는데 한 달 만에 끝난 것이다. 본선이 짧을수록 덩치 큰 정당의 후보가 유리하다. 원래는 대선 기간이 6개월 정도이고, 그랬다면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2022년 대선에 출마한다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지금 제 머릿속에 대선은 없다. 내년 지방선거 때 당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8월 전당대회에) 나갔다. 당과 운명을 함께하겠다. 다음 대선을 위해 안전하게 ‘경력관리’ 하는 길을 버리고, 당을 살리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걸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열풍이 참 거셌다. 당시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저는 여러 분야를 경험했는데 정치는 다른 분야와 다른 점이 하나 있더라.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상대방이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정치인과 정당의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시작하겠다.”

글 최경호·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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