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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좌파 슈미트, 왜 전술핵 결심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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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정신은 과장과 기만·불확실성이 혼재한 국난기에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값싼 온정과 어설픈 판단, 경솔한 실험은 5000만 국민을 비극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요즘 웃으면서 비극의 길로 안내하는 주장이 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역겨운 것은 ‘북한은 핵 개발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며 그쪽 대변인처럼 굴다가 핵 완성 단계인 지금 와서 ‘김정은의 핵 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속삭이는 핵동결론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선제적으로 중지해 북한을 감동시켜 핵 포기를 유도하자’는 평화론도 있는데 이는 동화적인 데다 한 꺼풀만 벗기면 한·미 동맹 해체론이다. ‘미국이 내줄 리 없고 북한도 겁먹을 리 없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자’는 전술핵 불가론도 있다.

핵이 평화 가져오는 역설 발견 #"핵우산 못 믿겠다" 미국과 담판

역사 속에서 전술핵 배치 문제는 1970~80년대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소련이 동독과 동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일방적으로 전개하자 슈미트 총리는 ‘굴복하는 평화’냐 ‘생존을 건 도전이냐’를 고민했다. 그는 국민의 평화 욕구에 부응하기보다 국가 생존의 길을 선택했다. 슈미트는 카터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핵우산을 믿을 수 없다. 서독과 서유럽에 전술핵을 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담판 끝에 소련의 핵미사일 수와 똑같은 전술핵 572기를 반입하기로 했다. 카터는 좌파 사회민주당 지도자인 슈미트의 결의와 핵 집념에 놀랐다고 한다. 카터의 마음을 움직인 건 핵 본성에 대한 슈미트의 치열한 성찰이었다.

“슈미트 총리의 두려움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핵 공격에 일대일 대응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소련이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런 인식은 소련으로 하여금 자제력을 잃고 핵을 꺼내들도록 만들 것이다. 슈미트는 카터에게 미·소 관계처럼 유럽에서도 핵인식의 격차를 없애야 한다고 설파했다(William Leonard, Closing the Gap 1977~79).”

무인도에서 총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엔 평화가 성립한다. 총이 한 사람에게만 있으면 평화가 깨지고 굴종만 남을 것이다. 슈미트는 인간 본성을 국가 관계에 적용시켜 ‘핵은 핵으로’라는 생존 논리를 끌어냈다. 슈미트의 결단은 훗날 동·서 유럽에서 전술핵의 동시 철수라는 진짜 평화로 이어졌다. 핵이 평화를 도출하는 역설의 탄생이다. 냉전이 끝난 뒤 고르바초프와 슈미트가 만났다. 이때 “막상 서독에 전술핵이 배치되자 모스크바는 무방비 상태가 됐다” “그게 바로 내가 의도했던 바”라는 대화가 오갔다. 정치적으로 슈미트는 큰 희생을 치렀다. 전술핵을 결단하는 과정에서 사민당 지지층 수십만 명이 반전·반핵 운동을 벌였다. 연정이 붕괴되고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됐다. 정권을 보수당에 넘겨줘야 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후회는 없다”며 짐을 챙겼다.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오자. 전술핵 불가론자들은 ‘미국이 내줄 리 없다’는 이유를 대지만 슈미트 사례처럼 그런 경우가 있었다. 미국과 유럽은 우리와 다른 특수 관계 운운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핵 결핍국은 핵보유국의 공격을 유발한다’는 슈미트의 핵 성찰과 오직 ‘국가 생존’이란 목표 하나로 미국 대통령과 벌인 담판이 효과를 본 것이다. 미국은 가만히 있는데 전술핵을 빌려주지 않는다. 불가론자들은 또 ‘북한이 겁 먹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고르바초프가 슈미트에게 토로했던 모스크바의 공포를 상기시켜 주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슈미트 사례를 허심탄회하게 탐구해서 실사구시적인 대책을 세워주기 바랄 뿐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