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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니호와 과학위성1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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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심재우
심재우 기자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한국에 외환위기가 불어닥치기 시작한 1997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이겐스호’가 발사됐다. 지구로부터 35억㎞를 항해한 끝에 2004년 6월 토성궤도에 도착했다.

태양계에서 둘째로 큰 행성인 토성. 환상적인 고리 덕분에 궁금한 점이 특히 많았는데, 카시니호가 상당 부분 해소해 줬다. 카시니호는 13년 이상 토성 주변을 돌면서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그 결과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얼음층 아래 열수가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열수로 인해 분출된 수증기를 분석한 결과 수소 성분도 발견했다. 수소와 열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2005년 또 다른 위성 타이탄에 착륙해 물 대신 메탄과 액체탄화수소로 채워진 바다를 확인하기도 했다.

15일 카시니호가 20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퇴역했다. 연료가 바닥나 더 이상의 임무수행이 힘들어졌다는 게 미 항공우주국(NASA)의 판단이었다. 카시니호는 마지막까지 토성 대기를 훑은 사진을 지구로 보낸 뒤 대기권으로 다이빙해 장렬하게 산화했다. 마치 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고로의 쇳물에 빠져 사라지듯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토성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산화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동영상이 TV 채널 곳곳에서 방영되며 인간을 대신해 토성 주변을 헤매고 다닌 카시니호에 ‘아듀’를 고했다. 미국과 유럽이 80년대부터 33억 달러(약 3조7000억원)를 들여 시작한 카시니-호이겐스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미국과 유럽은 왜 막대한 돈을 들여 토성 탐사 계획을 세웠을까. 단순히 재정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자연에 도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한몫했으리라. 순간 우리의 ‘생얼’이 떠올랐다. 2003년 10월의 기억이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었다. 우주관측용 소형 위성으로 쏘아올린 과학위성 1호의 궤도상 위치를 찾지 못하다가 발사 60시간 만에 간신히 신호를 잡아낸 다음날이었다. 한 의원이 마이크를 잡더니 엄중하게 따졌다. “과학위성 1호의 목적이 우주를 관측하는 것이라는데, 우리가 100억원을 들여 우주를 볼 이유가 있습니까. 지구를 봐야지 쓸데없이 우주를 봐서 어디에다 씁니까.”

그로부터 14년. 남들은 민간 우주선에 탑승해 화성을 탐사하고 혹은 달로 떠난다는데, 한국은 여전히 우주개발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 당시 그 국회의원은 현재 집권여당의 중진으로 활동 중이다. 우주는커녕 미래도 못 보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대다.

심재우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