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살아야 한국경제도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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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신용등급 하락과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국내 종합상사들이 살아남으려면 자회사를 줄이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고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본의 대표적 종합상사인 이토추(伊藤忠)의 무로후시 미노루(室伏稔)회장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총회 참석차 방한해 2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투자확대와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사업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 종합상사들이 살아날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대규모 종합상사는 많을수록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므로 붕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토추상사는 지난해 매출액이 10조5천억엔(약 1백여조원)으로 일본의 3대 종합상사 중 하나다.

무로후시 회장은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석유.가스.탄광 등 에너지 개발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철도.고속도로 등의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기간산업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면서 "이들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은 일본 기업뿐 아니라 브라질과 한국 등 세계 각 기업에 판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일본 종합상사들은 금융 조달자로서의 역할도 강화하고 해외 기업과 합작하는 등 사업영역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면서 "중국에 의류공장을 설립해 미국에 수출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펼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사업영역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매출액보다는 수익성을 보다 높이 평가하고 불필요한 자회사 수를 줄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이토추는 1997년 1천2백개였던 자회사 수를 올해 6백개로 줄였다"고 조언했다.

무로후시 회장은 "1970년대 초 한국에서 종합상사제도를 도입할 당시 이토추에서 10여명의 전문인력을 파견하기도 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무엇보다 당시 이토추상사의 회장이었던 세지마 류조씨가 일본의 종합상사시스템을 적극 건의해 한국 정부가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로후시 회장은 이어 "이토추.마루베니 등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와 한국의 삼성물산.LG상사.SK글로벌 등은 양국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이런 회사들이 그대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과 다른 발전모델을 지향한 독일과 일본 경제가 요즘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미국도 엔론사 분식회계 등 문제가 많으므로 한국은 일본.독일 모델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장점은 적극 수용해 '한국식'경제발전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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