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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술핵 반대”"대북 인도적 지원” … 왜 이렇게 서두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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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통일부 당국자가 어제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라 8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21일로 예정된 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아동과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영양강화 사업과 백신 및 필수의약품,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을 위해서다. 북한 동포에 대한 지원은 800만 달러가 아닌, 그 10배, 100배라도 해야 마땅하다.

통일부, 북 핵실험 11일 만에 “인도적 지원” #대통령, 외신 인터뷰서 핵 개발·재배치 반대 #국제적인 대북제재 공조 균열시킬 우려 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지 11일 만이고 이를 제재하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된 지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리 인도적 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국민 정서에 부합하느냐부터 문제다. 북한 6차 핵실험은 남북한 군사적 균형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게임 체인저’다. 그만큼 국민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또 우리를 “동족의 껍데기를 쓴 미국의 개”라고 비난했다. 이런 판국에 대북 지원이라니,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비판까지 고개를 드는 것이다.

또 국제적인 대북제재 공조에 균열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멕시코에 이어 페루가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중국도 이번 제재 결의안 통과 때 ‘규탄’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 제재를 ‘작은 걸음’이라 하고, 미 국무부가 ‘천장’이 아닌 ‘바닥’이라고 말한 것은 추가 독자제재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같은 시점에서 대북 지원은 자칫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당장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북한에 대한 압력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통일부의 거듭되는 엇박자 행보와 조급증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통일부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뜬금없이 남북 군사회담과 개성공단 재개 검토 등을 발표해 ‘극한 압박’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여 왔다. 여기에다 어제 문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술핵의 재배치는 냉정하게 계산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미국에서 매케인 상원의원 등 다양한 인사들이 "전술핵 재배치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최고 결정권자인 문 대통령은 전략적 모호성을 남겨두어야지 왜 지나치게 서둘러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 했는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과 통일부의 급변침은 일부 진보진영의 “박근혜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의식한 결과일 수 있다. 아니면 북한에 먼저 화해 메시지를 던져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지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과 통일부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지 말고 넓게 보고 신중히 나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