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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지나도 여전”…학교폭력에 아들 잃은 아버지의 끝없는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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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이 지났어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폭력이 반복되고 있어요. 제발 이제는 이 악순환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12년 전 학교폭력으로 중학생 아들을 가슴에 묻은 홍권식(59)씨가 12일 부산역 앞 카페에서 청소년 폭력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2년 전 학교폭력으로 중학생 아들을 가슴에 묻은 홍권식(59)씨가 12일 부산역 앞 카페에서 청소년 폭력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05년 부산 개성중 동급생 폭행치사 사건의 피해자인 고(故) 홍성인군의 아버지 홍권식(59)씨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는 아들 사망의 충격으로 뇌경색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았다. 이후 말을 더듬게 됐다. 2013년에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그의 부인은 지금도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어 혼자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한다.

12일 부산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홍씨는 최근 부산 여중생 사건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폭행 사건에 대해 "정말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성인이를 죽게 만든 그 친구를 원망하진 않는다. 원망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다만 교육 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와 재발 방지를 바랐을 뿐인데, 결국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이후 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교육 관여자에게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뚜렷한 과실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교사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12년 전 개성중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005년 10월 1일,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던 오전 10시 50분쯤 성인이는 소위 학교 ‘짱’이라고 불리던 같은 반 친구 최모군으로부터 교실에서 폭행을 당했다. ‘딱밤 때리기’ 장난을 하다가 성인이가 욕설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주먹과 발 그리고 의자에 맞은 성인는 폐의 3분의 2가 파열됐고, 머리 전체엔 피가 고였다. 성인이는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 사건은 ‘개성중 폭행치사 사건’으로 불리며 공분을 샀다. 특히 가해자 최군이 개인 홈페이지 등에 “살인도 좋은경험^^ 덕분에 인간은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어 ~ 어차피 난 법적으론 살인이 아니니~ㅋ” “개만도 못한 것들이 짖어대?” 등의 글을 올려 비난 받았다.

사망 직후 이틀만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개성중학교 살인 사건’ 등의 글이 1000건 이상 게재됐고 댓글도 수 만건이 달렸다. 최군이 대형 포털 사이트 고위 임원의 아들이라는 거짓 소문이 돌면서 해당 사이트에 항의가 쏟아져 최군의 이름이 검색 금지어로 지정되는 등 상당한 후폭풍이 있었다.

◇교육청과의 쓸쓸한 싸움, 남은 건 상처 뿐…“가해자는 의대 진학”

홍씨는 아들의 사망 직후 최군보다는 교육 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인 심정이야 최군을 감옥 보내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가 불쌍하듯, 어찌보면 그 아이도 또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교 당국의 책임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학교 당국의 책임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쉬는 시간이었잖습니까"라고 답하는 당시 교장. [KBS 캡처]

부산구치소에 수감된 최군을 위해 홍씨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형사합의서를 써줬다. 최군의 가족이 보석 신청을 하자 재판부는 미성년자인 점과 합의가 이뤄진 점을 고려해 석방 결정을 내렸다.

같은해 11월 11일 검찰은 단기 4년, 장기 6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12월 2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다. 최군은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법 적용 하의 보호처분을 받고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 홍씨는 "최군이 이후 명문대 의대에 진학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홍씨가 교육청과 소송전을 벌이던 때 최군의 담임을 지낸 한 교사는 공중파 방송에 나와 “최군은 모범생이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홍씨는 학교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결국 “다시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써준 뒤에야 고소가 취하됐다.

그는 이 얘기를 전하면서 “또 다시 그들과 엮일 것 같아 너무 두렵다. 이젠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끝내 받지 못한 아들의 중학교 졸업장

홍씨는 2007년 2월 개성중 졸업식에 갔다. 교장에게 “아들 납골당에 졸업장만이라도 갖다 주고 싶다”고 요청한 뒤였다. 그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졸업식장에 가서 종일 기다렸다고 한다.

2007년 2월 아들 성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개성중 졸업식을 찾은 홍권식씨. [사진 홍권식씨]

2007년 2월 아들 성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개성중 졸업식을 찾은 홍권식씨. [사진 오마이뉴스]

“그냥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계속 기다리면 언젠가 제 아들의 이름이 불릴 줄 알았죠. 그러나 끝내 성인이의 이름은 졸업식장에 울리지 않았어요. 혹시나 교실에 가면 받을 수 있을까 했지만, 그것도 부질 없는 일이었죠. 납골당에 졸업장을 꼭 가져다 주고 싶었는데 ….”

홍씨는 졸업식 이후 '더이상 아들을 붙들고 있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성인이가 나온 사진을 모두 불태웠어요. 납골당에 가면 성인이 친구들이 아직도 찾아와 메모를 남기곤 하는데 최근에 ‘성인아, 내가 매년 기일마다 왔다 간다. 이번에 캐나다로 연수가서 내년에는 못 온다. 미안하다.’라는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성인이와 찍은 사진 뒤에다가 써놓은 메모였는데, 그 사진도 불태웠어요.”

홍씨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야 한 시도 떠난 적 없지만, 남들 앞에서 티내기 싫어 술도 끊었다. 괜히 술주정할 것 같아 그렇다”고 말했다.

◇“나 같은 피해자, 이제는 제발 없어졌으면 ….”

최근 각계에서 제기된 소년 범죄 처벌 강화 주장에 대해 홍씨는 “소년범을 보호하고 말고의 논의보다 학교폭력 자체를 예방하기 위한 논의가 먼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년 전 학교폭력으로 중학생이었던 아들을 가슴에 묻은 홍권식(59)씨가 12일 부산역 앞 카페에서 청소년 폭력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2년 전 학교폭력으로 중학생이었던 아들을 가슴에 묻은 홍권식(59)씨가 12일 부산역 앞 카페에서 청소년 폭력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그는 “학교 폭력 가해자든 피해자든 결국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모두가 고통스럽다. 피해자, 나같은 2차 피해자가 수십년째 나오고 있는데, 이제는 정말 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당시 학교를 다니던 성인이의 친구들도 걱정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친구 관을 직접 들어 옮긴다는 게 그들에게도 얼마나 큰 비극이었겠나. 다들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나이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군이 온라인에 올린 글에 대해서도 홍씨는 “다시 최군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왜 그런 글을 남겼는지는 꼭 묻고 싶다. 나는 최군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치기에 한 일이라고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 피해자가 나왔고, 이 정도 이슈가 됐으면, 이제는 누군가 책임지고 폭력의 사슬을 끊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느린 걸음으로 떠나는 홍씨에게 무얼 타고 가느냐고 물어보자 “장애 복지카드가 있어 공짜로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부산=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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