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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인구 증가 없다면 2050년 인도네시아에도 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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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사이먼 뱁티스트 EIU 수석 이코노미스트 강연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인구가 줄어들면 한국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는 경고는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한국의 인구 감소가 지속했을 때 한국 경제의 위상이 세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그림은 드물었다.

노동력 줄어 1% 이하 성장에 갇혀 #연구개발, 서비스산업 잠재력 커 #여성 참여 늘리고 이민 문 열어야 #인도 연 6%씩 성장 세계 3위 부상 #미·중과 함께 ‘빅3 경제권’ 형성

2050년이 되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전망이 11일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33년 뒤다. 글로벌 경제정보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사이먼 뱁티스트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조찬 강연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사이먼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11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2050년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세계경제연구원]

사이먼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11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2050년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세계경제연구원]

그는 ‘세계 경제 성장 전망과 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올해 세계 경제 10위권에 든 국가 중 한국과 이탈리아는 2050년에 목록에서 빠지고, 지금은 10위권에 없는 인도네시아와 멕시코가 새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0위권 경제 대국으로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인도·브라질과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 G7 국가들이 올라 있다.

33년 뒤 10위권에서 탈락하는 한국·이탈리아의 공통점은 출산율이 매우 낮고,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 여성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나을 것으로 예상하는 아이 수)은 1.17명, 이탈리아는 1.39명이었다. 모두 인구 대체율(2.1명)을 밑돈다. 2050년 10위 경제권에 이름을 올리는 멕시코·인도네시아는 출산율이 높고, 생산가능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결국 경제 규모 축소의 근본 원인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다.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지금까지 노동인구 증가가 성장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구가 줄어 성장 동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경제 규모가 작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생산가능 인구를 늘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아직 여성의 노동참가율이 낮기 때문에 여성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봤다. 여성 외에도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 소외 계층의 노동 참여율을 끌어 올리고, 이민자를 받아들여 생산가능 인구를 늘리는 방법도 제시했다. 그는 “앞으로 노인 요양 시설 등에서 필리핀 간호사 등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반(反) 이민 정서가 높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며 "결국 각국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출산율을 높여서 인구 감소를 지연시키는 방법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되는 환경을 바꾸는 것도, 사람의 행동 패턴을 바꾸는 것도 모두 쉽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 높이기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역시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전망 분석에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변수는 빠졌다. 그는 "통일이 단기적으로 어렵겠지만 한국이 발전한 방식을 북한에 도입하면 장기적으로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성장률은 최근까지 3.5~4%대를 기록했지만 2030년까지는 연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2050년까지는 1% 이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앞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과 경쟁하면서 수출을 다각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연구개발(R&D)이나 기술혁신이 뛰어나며, 서비스 산업 잠재력이 큰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해외 직접 투자(FDI) 유치 확대, 규제 완화, 조세개혁 등으로 성장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제 대국에서 밀려나더라도 개인의 삶의 질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50년으로 갈수록 1인당 GDP 성장률은 실질 GDP 성장률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국의 GDP성장률은 1인당 GDP성장률보다 높다. 하지만 2031년에는 역전될 전망이다.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는 인구 증가보다는 기술혁신 등에 의해 성장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국가 경제 전체가 축소되더라도 1인당 GDP는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혁신이 지속되면 개인의 삶의 질이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인도의 급부상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2대 경제 대국이지만 2050년에는 인도가 빠르게 성장해 세계 3대 경제권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는 2029년께 경제 규모에서 일본을 따라 잡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는 "그동안 인도 경제가 뜬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기대에 못 미쳐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생산성이 낮은 농촌에서 생산성이 높은 도시로 이주하고, 농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모습이 1990년대 중국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인도는 6~7%씩 성장하며 과거 중국의 역할을 재현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이먼 뱁티스트

EIU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정치경제 정보분석 기업이다.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5년 전 EIU에 합류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각국 정부·기업과 협력해 자문과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생산성과 기술 혁신이며, 특히 신흥국과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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