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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일 핵무장 시간문제"라더니 '전술핵 배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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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최신 전술 핵폭탄 B61-12형 정밀유도 지하관통폭탄

미국 최신 전술 핵폭탄 B61-12형 정밀유도 지하관통폭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3월 29일 CNN 방송에서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갖는 건 시간문제일 뿐 그들은 어차피 갖게 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진행자인 앤더슨 쿠퍼가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가져도 좋다는 거냐”는 질문에 “인접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상황에서 그들도 절대적으로 핵을 가질 것”이라고 답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5월 다른 방송에선 “한국과 일본이 핵보유국이 되는 걸 허용할 거냐”는 질문에 “우리는 세계의 군대, 세계의 경찰 역할을 계속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대선 후보시절 "방위 스스로해야"…의회 예산 승인 등 필요

최근 백악관이 ①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고 ②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을 대북 옵션으로 검토 중이라는 미국 NBC 보도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미 긍정적 입장을 밝혔던 셈이다. 하지만, 후보때 생각과 45대 대통령의 정책 결정은 다를 수 있다. 의회의 예산 등 승인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10일(현지시각) CNN방송에 출현해 “한국 국방장관이 며칠 전에 핵무기 재배치를 요구했다. 이는 심각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에도 뭔가 상황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북핵 용인 및 동북아의 핵무장이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가지 옵션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매케인 위원장은 “세 번째 옵션으로 미사일 방어와 함께 한국 방어를 위한 전력을 갖춰 김정은에게 침략적 방식으로 도발할 경우 대가는 ‘종말(extinction)’임을 확실히 알게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매케인 위원장의 발언은 북한은 물론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전술핵 배치를 검토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매케인 "심각하게 검토해야"…그러나 동북아 핵무장 반대

과거에도 미국 의회가 북핵 대응방안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한 적은 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다. 2013년 12월 미 하원 군사위는 공화당 의원 주도로 서태평양 지역 전술핵무기 재배치 및 재래식 전력 추가 파병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해 국방예산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특히 힐러리 국무장관과 레온 파네타 국방장관에게 북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호전적인 위협에 대응해 핵무기를 해당지역에 전진 배치하는 데 필요한 군수지원 및 실행 방안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란과 핵협상을 포함해 비핵화 정책과 핵전력 감축 정책을 추진하던 상황이어서 실현되진 못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핵무기 현대화를 지시하는 등 핵전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천명하면서 전임 오바마 정부의 핵감축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존 냉전시대 개발된 노후화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 Ⅲ,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Ⅱ의 수명을 연장하는 작업과 함께 첨단 소형 핵폭탄의 신규 개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북한의 6차 핵실험이후 한국엔 B61-12형같은 북한 지하 핵시설을 파괴하는 용도의 정밀유도형 지하관통 핵폭탄 배치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최신형 핵폭탄 B61-12 지하관통폭탄을 전투기에 장착하는 모습

미국 최신형 핵폭탄 B61-12 지하관통폭탄을 전투기에 장착하는 모습

전직 주한대사들 "북한만 자극, 한국 도덕적 지위 상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포기한다는 잘못된 메세지를 줄 수 있는 전술핵 배치를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럴 경우 한반도 비핵화가 깨지는 동시에 일본의 핵무장의 길을 터주는 등 동북아가 지구촌 핵군비 경쟁의 진앙지가 될 우려까지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핵개발을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자위권으로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전술핵을 배치하면 핵 보유의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술핵 배치가 실제 북핵 억지력을 높히는 데도 큰 효용은 없으면서 북한의 표적으로 부상해 국지적 도발 가능성만 높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운용중인 전술핵무기는 북한의 핵공격에 대한 대량 보복용이 아니라 F-15ㆍ16, F-22, F-35에 탑재하는 선제타격용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익센터의 해리 카자니스는 트위터에서 “미국 본토의 ICBM이 평양까지 도달하는 데 20분 걸리는 상황에서 직접 배치할 경우 수분내로 타격 시간을 줄이는 정도 외에 전력을 강화하는 의미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마크 리퍼트, 성 김 등 전 주한 미국 대사들도 앞서 국내의 전술핵 배치에 대해 “북한에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북한만 자극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국의 도덕적 지위만 포기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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