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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보수층서 ‘핵무장론’ 확산…“11년 전 아베-라이스도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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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일본 보수층에서 핵무장론이 점차 확산되는 기류다. 방아쇠를 당긴 건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다. 이시바는 지난 6일 TV아사히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이 핵으로 지켜준다고 하지만, 일본 국내에 (핵무기를) 두면 안 된다는 것이 과연 맞는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전후(戰後) 일본이 고수하고 있는 ‘비핵(非核) 3원칙(핵무기의 보유·제조·반입 금지)’에 어깃장을 놓으며 일본 보수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계그룹 중 한 명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계그룹 중 한 명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중앙포토]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발언에 일본 정부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이튿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비핵 3원칙) 재검토를 논의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논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시바 시게루 '전술핵 배치' 발언 뒤 후폭풍 거세 #日정부 진화 나섰지만…보수층선 공감대 확산 일로 #보수 언론인 "자민당 내에서 논의 활성화시켜야" # #"아베 1차 내각 때 미·일 간 논의…라이스 회고록" #"북한 놔두면 큰일난다는 것 중국도 뼈저리게 깨달을 것" #산케이 "美 일각서 적극적인 일본 핵무장 지지론 나와"

그러나 이를 두고 보수 언론인 가시야마 유키오(樫山幸夫) 전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장은 특별한 해석을 내놨다.
그는 11일 웹매거진 웨지인피니티에 「일본의 ‘핵무장론’이 최대 억지력」이란 기고문을 통해 “이시바 발언에 대해 관방장관이 냉담했던 것은 정부 입장으로선 당연하다”며 “내각 일원도 당 중역도 아닌(無役) 이시바는 입장이 다르다. 자민당 내에서 (핵무장) 논의를 활성화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시야마는 “전술핵 배치를 포함한 일본 핵무장 논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일·미 간에 있었다”며 일본의 핵무장이 비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사례로 2006년 10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1차 내각 당시 총리 관저에서 오간 구체적 대화를 들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에서 세번째)가 2015년 10월 가나가와현 앞바다 사가미만에서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에 탑승해 크리스 볼트(왼쪽에서 네번째) 함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아베 총리 왼쪽은 나카타니 겐 당시 일본 방위상, 맨 오른쪽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사진 지지통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에서 세번째)가 2015년 10월 가나가와현 앞바다 사가미만에서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에 탑승해 크리스 볼트(왼쪽에서 네번째) 함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아베 총리 왼쪽은 나카타니 겐 당시 일본 방위상, 맨 오른쪽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사진 지지통신]

당시 아베 총리가 방일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일본사회의 우려를 전하며 뼈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자민당 정조회장이 “비핵 3원칙을 고쳐야 한다”며 핵 보유론을 불지피던 시기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의 회고록 표지.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의 회고록 표지.

라이스의 회고록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일본이 핵개발에 손을 댄다는 선택지는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도 “그것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런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회고록에는 당시 라이스가 어떻게 답변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강경파인 라이스는 “일본에서 그런 목소리(핵무장)가 나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도록 제멋대로 놔두면 심각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중국도 뼈저리게 깨달을 것”이라는 생각을 적었다.
라이스 방일 직후 아소 다로(麻生太郞) 당시 외무상은 “비핵 3원칙을 유지하는 게 정부 방침”이라면서도 “(핵무장을) 논의해 두는 것도 좋다”고 밝혀 논란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미국이 대북 억지수단으로 ‘저팬 카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은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스해머는 2003년 1월 칼럼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무력행사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가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일본이 스스로 핵무장을 하든지, 미국의 핵미사일을 일본에 제공하든지 해서 북한과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에 대항시키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유효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인 9.9절을 앞두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수소폭탄 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가 펼쳐졌다. [평양 AFP=연합뉴스]

지난 6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인 9.9절을 앞두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수소폭탄 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가 펼쳐졌다. [평양 AFP=연합뉴스]

최근 들어선 이 같은 논의가 더욱 확장되는 모양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3일 워싱턴발로 “미국 내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단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며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을 용인해 북핵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미국 군사전문가의 입을 빌려 “일본이 핵무기를 가지면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안전해진다. 강한 일본은 중국의 팽창을 막는다”는 적극적인 일본 핵무장 지지론도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가시야마는 기고문 말미에 “일본 정부는 직접 ‘비핵 3원칙’ 재검토를 거론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며 “여당 주도로 크게 부각시켜 찬반을 포함한 국민 논의로 넓혀나가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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