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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최재식의 연금 해부하기(8) 뿌린대로 거둬지지 않는 공적연금,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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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로 가보자. 연금수급자 바우씨도 망백(望百)의 나이를 넘겼다. TV에서는 ‘연금개혁’이 핫이슈다. 바우씨는 생각에 잠겼다. “연금재정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네.”

이해당사자들 '무임승차' 심리 #비용부담 뒤로 넘기고 혜택만 #연금제도 치유 점점 어려워져

[중앙포토]

[중앙포토]

우리는 과거에 설계한 연금제도가 너무 근시안적이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도 똑같은 오류를 범한다. 다음 세대는 또 우리의 잘못을 캐낼 것이다. 도대체 문제점을 알면서도 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태한 합의에서 비롯된 관성 때문일까?

공적연금은 국민의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이 정책목표다.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재분배도 하고,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적정 수준의 급여를 보장하기도 한다. 재원조달방식은 세대 간 부양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부과방식이다.

부담과 혜택 사이  

그래서 공적연금은 부담과 혜택 사이의 연계성이 부족하다. ‘뿌린 대로 거둬지는 것’이 아니다. 현역 때 내는 보험료는 퇴직 후에 연금 받는 것을 묵시적으로 약속받기 위한 것이지, 낸 만큼 연금으로 돌려받자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내는 돈보다 많은 연금을 받기 원한다. [중앙포토]

누구나 내는 돈보다 많은 연금을 받기 원한다. [중앙포토]

누구나 내는 돈보다 많은 연금을 받기를 원한다. 당장 누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면 비용은 전가하고 연금을 부풀린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각자의 입장에서 욕심을 부린다.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도 못한다. 이것이 연금운영이 어렵고 지난(至難)한 첫째 이유다.

‘빙산의 일각(一角)’이란 말은 수면 위에 보이는 빙산은 전체의 1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물속에 있다는 뜻이다. 거대한 빙산이 서서히 녹고 있더라도 물밑을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연금제도도 마찬가지다. 미온적인 변화가 지속되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초래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심각한 위기는 눈앞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는 인간의 속성, 이것이 문제다.

연금제도는 왜 손쓰기 어려울 때가 돼서야 문제가 가시화할까? 그 이유는 제도에 가입해 연금수급을 마칠 때까지 보통 60~70년 정도나 걸리는 초장기성 보험이기 때문이다. 제도 초기에는 연금지출이 적지만, 제도가 성숙하면서 연금수급자가 증가하면 연금 지출도 급격히 늘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개시비용이 적게 드는 것만 보고 적정한 보험료 징수는 뒤로한 채 연금 혜택을 부풀리기 쉽다.

문제가 표출되기 시작하면 이미 성인병 체질로 바뀌어 치유가 어렵다. 기존 연금수급자의 기득권 주장 때문에 제도를 소급해서 개혁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금제도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한 시폭(time span)에 놓고 정책결정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문제가 나타났을 때 허둥댄다.

달착지근한 연금유혹

달착지근한 연금 유혹. [중앙포토]

달착지근한 연금 유혹. [중앙포토]

모든 복지정책이 그렇듯이 연금도 마찬가지다. 혜택을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정말 어렵다. 한번 맛들이면 줄이기 어려운 중독증이다. 연금 받는데 집중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내 연금으로 확신하고, 문제가 생겨도 의도적으로 눈감고, 남들이 뭐라 해도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균형 있게 사고(思考)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에 위배되는 주장을 접하면 필사적으로 그것의 흠을 잡으려고만 한다.

인간은 숫자 팩트(fact)에도 둔감하다.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했다. 연금지출이 점점 늘어나면서 감각이 무뎌지고, 후세대 부담 증가 쯤은 잊은 지 오래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실수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타조란 놈은 모래 속에 머리만 처박으면 위험이 사라진 줄 안다. 우리가 그 짝이다.

합리적 무관심, 비겁한 침묵

연금제도는 위기에 직면해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해관계자들의 ‘합리적 무관심’ 때문이다. 내가 나서더라도 연금 개혁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고,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개혁이 성공하면 그 효과는 같이 나눌 수 있다. 한마디로 ‘무임승차(free-ride)’가 가능하다. 집단 구성원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행동의 딜레마’ 현상과 마찬가지다.

집단행동의 딜레마. [중앙포토]

집단행동의 딜레마. [중앙포토]

이런 ‘비겁한 침묵’ 때문에 이익은 드러내고 비용은 감추는 정책이 채택되기도 한다. 적정한 비용부담은 뒤로한 채 당장 이익이 되는 연금을 인상하는 과거의 많은 정책결정이 그랬다. 지금도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복지 포퓰리즘(populism)은 비겁한 침묵을 등에 업고 활개를 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부분만 부각하는 ‘조명효과’ 때문에 연금수혜만 보이고 비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회복 탄력성이 낮은 연금제도는 점점 치유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연금문제 해결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다. 누가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다. 골치 아픈 건 다음 사람에게 미룬다. 이렇게 폭탄 돌리기를 계속하는 것이 정책결정자들의 속성이다. 그래서 자신이 일하는 동안에는 연금이 정책의제로 채택되는 것을 가능한 막는다.

가끔은 마음속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쉽게 일을 벌일 수 없다. 괜한 일 벌인다고 윗사람에게 혼나는 것도 참기 어렵다. 이해관계자들이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하는 것도 무척 두렵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커진다.

정책결정자들만 연금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권이든 인기 없고 표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다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마지못해 한다. 이것을 우리는 ‘벼랑 끝 전술’이라 한다. 간혹 벼랑 끝이 아니더라도 제도개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면 일반 국민들이 좋아하듯이 표 계산에서 유리할 때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silver2061@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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