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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재수사 첫발 주춤…檢 "양지회 조직적 개입정황 충분"

중앙일보

입력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내부 모습. [중앙포토]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내부 모습. [중앙포토]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의 전직 간부와 증거은닉의 혐의를 받고 있는 현직 간부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 KAI 방산비리 의혹 등과 관련한 일련의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외곽팀장에 대한 검찰의 첫 구속영장까지 기각이 되면서 검찰 내부에도 반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양지회 전현직 간부 구속영장 모두 기각 #검찰 "납득 어렵지만 수사 차질 없이 진행" #양지회 조직적 개입 의혹 규명 여부 주목

앞서 검찰은 양지회 전 기획실장 노모씨에게 공직선거법ㆍ국정원법 위반 혐의, 사무총장 박씨에게 증거은닉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재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외곽팀장은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지난달 21일, 이달 1일 수사의뢰한 48명이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범죄혐의는 소명되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보기 어렵다”고 노씨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노씨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정원의 외곽팀장으로 일하며 양지회 사이버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사이버 여론조작 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즉시 2차장 명의로 유감을 표하는 입장을 냈다. 검찰은 8일 영장기각 직후 “두 피의자 모두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안은 양지회 측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국가 예산을 활동비로 받으며 노골적인 사이버 대선 개입과 정치관여를 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수사가 이뤄지자 (양지회 측에서) 개인적 일탈로 몰아가기를 하면서 증거를 은닉했다”고도 했다.

서울중앙지검도 8일 오전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영장기각 등과 관련된 서울중앙지검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글에서 중앙지검은 “그동안 검찰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감내해 왔으나, 최근 일련의 구속영장 기각은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검찰직원들이 8월 23일 오후 서울 방배동 양지회를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검찰직원들이 8월 23일 오후 서울 방배동 양지회를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검찰은 노씨의 혐의 입증에 대해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활동비 지급, 동호회 회원들과의 사이버 공작 활동 등 객관적인 증거들이 이미 상당수 확보가 됐다”며 “죄질에 비춰 구속 수사가 맞다고 판단을 했는데 법원이 도망ㆍ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검찰은 노씨 외에도 양지회 회원 다수가 국정원의 사이버 공작 활동과 이후 은폐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의 일탈 차원이 아니라 양지회가 국정원의 각종 지원을 받아 조직적인 차원에서 사이버 공작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2010년 양지회가 들여온 컴퓨터 40대가 ‘국정원 00부대 산하’ 명의로 구입된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민간 단체인 양지회가 국정원 명의로 컴퓨터를 지원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양지회 사이버동호회의 경우 ‘안보 견학’을 하는 과정에서 민간 단체가 접근할 수 없는 보안 지역을 국정원의 지원으로 방문하는 등 각종 지원을 받은 정황이 있다. 국정원과의 연계성이 과도하다는 점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문제가 불거진 뒤 양지회 관계자들이 잇따라 회의를 연 이유도 살펴볼 방침이다. 양지회는 지난달 16일 직원 5~6명이 참여한 회의를 연데 이어 다음날 비상근직 부회장단 회의를 열었다.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회의록과 참석자들의 메모지 등을 입수해 분석 중이다. 통상적인 회의 차원을 넘어 연루의혹을 덮기 위한 정황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회 건물 지하 1층 공용 휴게실에 설치된 PC 2대에 남은 증거 인멸의 흔적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검찰에 따르면 양지회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전 국정원 전 기능직 직원 A씨가 컴퓨터에 윈도우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윈도우 등 OS를 새로 설치할 경우 기존 자료들이 삭제되기 때문에 은폐의 증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거쳐 이 컴퓨터에서 ‘월별 사이버 활동 실적 보고’ 파일을 복원한 상태다.

증거은닉 혐의를 받고 있는 사무총장 박씨는 압수수색(8월 23일) 당시 지인들과 백두산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사무실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는 자료 일부를 파쇄하고, 일부는 자택, 차량 등에 보관했다. 압수수색 뒤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양지회 관계자는 ”컴퓨터의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이 국정원 명의를 빌려 40대를 구입했고 금액 지급 등에 대해선 기록이 다 남아있는 상태”라며 두 차례 회의에 대해선 “언론 보도 등을 접하고 놀란 직원과 회원들이 모여 걱정하는 의견을 나눴다”고 해명했다. 증거 인멸 의혹에 대해선 “일부 회원들의 실수, 일탈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양지회 전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건 과도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영장 기각과 관계없이 남은 외곽팀장들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양지회의 조직적인 개입 의혹은 물론 남은 팀장들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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